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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 지극한 사랑의 비밀

mayiread 2022. 12. 2. 19:02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작가 한강을 처음으로 읽은 기록을 남기고자 포스트 올립니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서, 그리고 신형철 평론가의 글들을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서도 몇 자 남깁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굳이 읽어야 할까 싶습니다.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작별하지 않는다>는 주로 제주 4.3 사건의 비극에 대해 쓰고 있는 소설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이 책은 한강의 자의식을 축성하는 신형철류 비평가들을 위한 소설로 읽혔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자학적일 수밖에 없는 소설가의 윤리적 자의식과, 그런 고행자에게만 진실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을 부여하려는 비평 정치를 위한 책으로 읽혔습니다.

 

작가 한강(좌측)과 문학비평가 신형철(우측) (출처: 중앙일보, 한국일보)

 

 

표현이 극단적이긴 하네요. 그렇다면 한강이 자신의 소설에 대해 남긴 말부터 같이 보며 이야기 나눠봤으면 싶습니다.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329p

몇 년 전 누군가 '다음에 무엇을 쓸 것이냐'고 물었을 때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바란다고 대답했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의 내 마음도 같다.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

 

한강은 '지극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했습니다. 주제랄까요. 소재는 앞서 이야기했듯 제주 4.3 사건입니다. 쉽게 말해 한강은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극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다음 질문이 떠오릅니다. 누구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일까요?

 

한강의 책 표지와 국회사삼조사단의 사진 자료

 

 

 

애도가 예술이 되어야만 한다면

한강은 이 지점에서 독자들을 매우 헷갈리게 합니다. 당연히, 한강은 제주 4.3 사건을 비롯한 여러 참극을 겪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는 합니다. 소설가인 주인공 '경하'는 '인선'이라는 친구를 통해 이 이야기에 접근하고, 그 속에서 뼈에 사무치는 사랑에 대해 들려줍니다.

 

<작별하지 않는다>, 311p

“... 내 기척에 엄마가 돌아보고는 가만히 웃으며 내 뺨을 손바닥으로 쓸었어. 뒷머리도, 어깨도, 등도 이어서 쓰다듬었어.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 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그렇다면 헷갈릴 건 없습니다. 항상 그렇듯 희생자들은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뻐근한 사랑'으로 재앙 같은 삶을 돌파해냅니다. 만신창이가 되어서요. 그런 이야기는 아무리 반복되어도 경이롭습니다. 독자들은 이런 경이로움과 특수함 속에서, 어떤 보편적인 감정적 진실을 경험하고 조금은, 아주 조금은, 더 사려 깊고 진실되게 변화합니다. (우리는 문학에서만 가능한 이런 윤리도 당위도 없는 변화 때문에, 문학을 읽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강이 독자들을 헷갈리게 하는 건, 그녀가 이들의 사랑보다도, 이들을 향한 자신의 사랑과 애도의 정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강의 이야기는 희생자들을 위한 자신의 애도의 정을 상징하는 예술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친구 '인선'을 위해 사력을 다해 희생하는 자신의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작별하지 않는다>, 24p

 그 나무들의 몸에 먹을 입힐 수 있지 않을까. 깊은 밤으로 지은 옷을 입히듯 정성스럽게, 영원히 잠이 부스러지지 않도록. 그 모든 일이 끝난 뒤, 바다 대신 흰 천 같은 눈이 하늘에서부터 밀려내려와 그들을 덮어주길 기다릴 수 있지 않을까.”

 

작품 속 나무 묘지의 꿈을 형상화한 한강의 Funeral (출처: 한강 웹사이트)

 

애도의 '흰 천'을 담은 한강의 영상 예술 작품 (출처: 한강 웹사이트)

 

 

Visual Arts — hankang

I Do Not Bid Farewell, 2018 Video footage from I Do Not Bid Farewell, 2ch video, Color, 18min40s, 2018 Courtesy the artist Copyright © Han Kang all...

han-kang.net

 

<작별하지 않는다>, 324p

아직 사라지지 마.

불이 당겨지면 네 손을 잡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눈을 허물고 기어가 네 얼굴에 쌓인 눈을 닦을 거다. 내 손가락을 이로 갈라 피를 주겠다.

 

같은 해 공연한 한강의 행위 예술 Walk. 피처럼 보인다. (출처: 한강 웹사이트)

 

 

 

재현이 윤리가 되어야만 한다면

황정아 평론가는 한강의 이러한 태도를 '재현의 윤리'와 '재현의 사명' 사이에서 분열하는 '센티멘털리즘이라는 오차'로 진단합니다(『창작과 비평』 194호(2021년 겨울호) 「'문학의 정치'를 다시 생각한다」).

 

서사 전체가 그것으로 뒤척이고 있다고 할 만큼 고통은 이 소설의 지배적 현실이지만, 그 가운데 가장 육박하는 것은 1부에 재현된 '실시간'의 고통이며 소설 전체에 파장을 남기는 그 고통에 견줄 때 4·3의 트라우마조차 배음으로 보인다.

... 여기서 전승이라는 문제는 어떤 전치(轉置)의 위험에 봉착한다. 역사적 트라우마의 전승에 대한 충실성이 역사 자체를 밀려나게 하고, 재현의 윤리를 둘러싼 고통이 재현하려는 고통보다 앞서 다가오는 것이다. 이 전치는 결코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애초에 설정된 '불가능한' 위치가 실제 좌표에 찍힐 때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오차'이다. 이제 고통의 흔적은 역사적 사건에서 화자 자신 쪽으로 옮겨오며 전승의 문제는 고통의 진정성으로 초점이 바뀐다.

오로지 고통의 강렬함에 의지하는 방식은 강렬한 감정일수록 진실을 담보한다는 도식에서나 감정의 당사자인 '나'의 문제 곧 자기반영성이 전면에 나선다는 점에서나 센티멘털리즘의 논리 안에 있다. '재현의 윤리'에 오래 머물수록 (정치적으로만이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모호해지는 아이러니의 원인도 여기에 있다.

 

창작과비평 194호(2021년 겨울호) 미리보기 [교보 eBook]

 

preview.kyobobook.co.kr

 

 

위 진단은 당연히 책의 뒤표지에 적혀 있는 신형철 교수의 추천사를 의식한 것이겠습니다.

 

이들 곁의 소설가 '나'는 생사의 경계 혹은 그 너머에 도달하고서야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만한 고통만이 진실에 이를 자격을 준다는 듯이, 고통에 도달하는 길은 고통뿐이라는 듯이. 재현의 윤리에 대한 가장 결연한 답변이 여기에 있다.

창비의 편집위원이기도 했던 황정아 평론가(좌측), 신형철 교수와 한강 (우측) (출처: 대학지성, 서울신문)

 

 

독자로서는 두 평론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한 듯합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더 이상 4·3 사건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도, 그 희생자들의 지극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것은 신형철과 같은 비평가들이 문학도들에게 요구하는 재현의 윤리에 대한 교과서이며, 한강 자신의 '지극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때문에 문단에 아는 사람이 없는 독자가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저는 찾지 못했습니다.

 

 

 

'지극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은

신형철은 "진실에 이를 자격"을 재현의 윤리로 인해 고통받는 작가에게 제한합니다. 그리고 그 자격을 축성받은 한강은 4·3 사건의 아픔이 지닌 그 보편적 잠재성에서 한국 문단을 향한 특수한 윤리를 끌어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독자인 저는 피로감을 느낍니다. 국내 문단 밖의 한국 문학 독자들을 상상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지극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요. 한강과 신형철에게 있을까요. 4·3 사건을 살아낸 생존자들에게 있을까요. 아니면 이미 곁을 떠난 누군가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전히 떠올리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있을까요. 그 질문에 가장 소설적인 답을 해줄 작품을 또 기다려볼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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