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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섭 교수, <아픔이 길이 되려면> #2 - 김승섭은 누구의 몸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까

mayiread 2022. 4. 18. 21:56

 

 

 

김승섭 교수의 첫 저작,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고 정리하고 있다. 지난 포스트에서는 '재소자'에 대한 글을 중심으로, 사회역학자로서 김승섭 교수가 갖고 있는 '죄와 벌'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죄인의 아픔도 아픔일까

 

김승섭 교수, <아픔이 길이 되려면> #1 - 죄인의 아픔도 아픔일까

오래전 직장 동료들과 함께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고 독서모임을 했었다. 언뜻 보고는 안타까운 사연만 늘어놓으며 '뻔한 말', '맞는 말'만 하는 그런 류의 책일 것이라 생각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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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가 모두 서로의 '아픔의 원인'일 수 있기에 우리 사회가 '질병 권하는 사회'일 수도 있다면, 우리는 서로의 '죄의 원인'일 수도 있고 우리 모두 '범죄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김승섭 교수가 범죄자들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고, 그들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 일지도 모르겠다.

죄인의 아픔을 대하는 그의 이러한 태도에서도 느껴지겠지만, 김승섭 교수의 비전은 대담할 정도로 단순 명료하다. '덜 아픈' 공동체. 김승섭 교수는 병리적 현상의 개인적, 직접적 원인을 규명하는 데 별 관심이 없다. 그저 다른 계층보다 '더 아픈' 이들을 찾아내고,  그들이 왜, 어떻게 더 아픈지에 대한 답을 그들의 환경 속에서 알아내고자 한다. 그리고 그 답에 대한 모종의 '보건정책적' 해결책을 논의하고, '덜 아픈 공동체'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김승섭 교수의, 그리고 사회역학의 일인 것이다.


더 아픈, 우리의 몸

실제로 이러한 모범적인 사회역학 연구가 이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몇 가지 주요 내용만 간추려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은데, 전공의, 소방공무원 등, 특정 계층에 한정할 수 있는 환경적 요인은 물론이고, 성적 정체성이나 경제 상황과 같이 유동적인 요인이나, 낙태나 고용불안과 같이 누구에게나 예기치 않게 찾아올 수 있는 상황적 요인도 있다.

 

사회 환경 요인 병리 현상 pp
학교 폭력 피해자 및 성소수자 우울증 및 정서장애 유병률 증가 18 ~ 21, 194, 196
사회적으로 고립될 때 폭염에 의한 사망률 증가 24~29
낙태가 법적으로 금지될 때 유아사망률 및 모성사망률 증가  31~38
경제적으로 가난할 때 절약 형질 → 당뇨병 유병률 증가 등 40~45
부당 정리해고나 고용 불안에 시달릴 때 자살률 및 사망률 증가 87~93, 126~127
위험한 노동환경에 노출될 때 암 발병률 증가, 급성 백혈병, 자살률 증가 등 114~119, 132~139


인생사 생로병사니 온갖 처지의 사람들이 온갖 이유로 아프고 죽는다는 데에 뭐 그리 놀라울 것은 없지마는, 그 어떤 요인에 의해서라도 우리가 병들고 죽을 수 있다는 사회역학의 '진단'은 꽤나 비관적이다. 그렇다면 사회역학의 '처방'은 어떨까?

우리의 몸이 무언가에 의해 더 아프다고 진단하는 것은 곧, 그 아픔의 원인에 대한 모종의 조치, 처방이 필요하다고 하는 일이 된다. 책을 읽으며 사회역학의, 그리고 김승섭 교수의 처방과 그 전망이 때론 밝게, 때론 어둡게 느껴졌는데, 생각해보니 아픔의 '원인'이 서로 다르다는 데에 그 이유가 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권력이 우리를 아프게 할 때

김승섭 교수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연구 분야 중 하나가 '직업병'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보건정치적' 활동이 다른 하나의 유형보다는 상대적으로 쉽다고 생각하는데, '아픔'의 사회적 책임을 한 두 개의 구체적인 집단에 직접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그렇다. 차별과 폭력, 갈등을 전제로 하는 정치 활동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그의 연구와 활동이다. 이 연구는 시작점부터 매우 분명하다. '피해자'는 해고 노동자들이고, 쌍용차를 포함한 유연한 고용시장의 주인들은 '가해자'이다. 그러니 이 '가해자'들에게 구체적인 책임과 대책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연구와 활동을 진행하면 된다. 실제로 대부분의 기사와 사회적 담론이 '피해자'로서의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을 다루고, 이런 유형의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들이 김승섭의 보건정치적 활동을 후원해왔다.

 

쌍용차 해고자 트라우마 연구, 인권위가 지원한다 - 미디어오늘

지난 2011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와 무급휴직자, 그 가족의 심리치유를 위해 만들어진 ‘와락’과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 이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건강을 연구해 온 고려대학교 김승섭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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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와 국가의 '가해자'로서의 역할을 규명하는 것 역시도 이런 '처방'의 한 축이었다. 복직과 같은 경제적 대응은 물론이고, 노조법 개정과 같은 입법-사법적 대응도 논의되었는데, 이 대응은 역시 '가해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이었다

 

'쌍용차 해고 9년' 김승섭 교수가 던진 3가지 질문

[현장] 국가인권위원회 지원으로 쌍용차 노동자·가족들의 건강 연구와 치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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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살인으로서의 해고', '국가 폭력'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잔인하리만치 단순하다. 국가 및 고용주와 피고용 노동자 집단 사이의 갈등은 항상 참혹할 정도로 단순한 싸움 아니었나. 삼성반도체와 급성 백혈병 환자들의 싸움, 원진레이온 및 제일화학과 석면 유발 폐암 환자들의 싸움, 그리고 거대 병원과 전공의들, 지방자치단체와 소방공무원들의 싸움을 상상해보라. 제도화된 이익과 피 흘리는 실존 사이의 이러한 싸움은, 항상 너무나도 간단하고 당연하게 느껴지는 처방(임금, 안전한 일터, 투명한 법률)을 얻어내기 위한, 우리의 몸과 생명을 건, 그러나 지난한 투쟁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사회역학자로서의 김승섭 교수의 역할은 분명하다. 기업과 국가가 얼마나 아픔의 '원인의 원인'이 되고 있는지를 규명하고, 그만큼 기업과 국가가 할 수 있는 보건정치적-정책적 대안을 논의하면 된다. 피해자/가해자의 구도도, 진단/처방의 내용도 분명한 이러한 사회 병리적 현상은 이제 논의해볼 다른 현상에 비해 훨씬 덜 '혼란스럽다'.

 


우리가 서로를 아프게 할 때

문제는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아픔을 마주했을 때이다. 사실상 공동체 구성원들 대다수에게 아픔의 책임을 물을 수 있기에, 어떤 특정한 집단을 아픔의 원인으로 지목할 수 없는 경우인 것이다. 성소수자, 재소자, 고독사하는 노인 등의 아픔과 죽음이 그 예인데, 이런 이들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렵다.

김승섭 교수의 주요 연구 분야 중 또 다른 하나가 '성소수자의 아픔'인데, <오롯한 당신>을 포함한 별도의 저서까지 동원하며 열심을 다해왔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이런 논의는 해고 노동자들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사실상 그 '처방'이 사회적 합의와 공감을 요청하는 '캠페인' 활동 수준일 수밖에 없고, 그마저도 정치적인 반대 의견이나 비난을 마주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오롯한 당신 - YES24

모두가 오롯한 당신, 오롯한 나가 되는 사회소수자가 건강한,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꿈꾸며 우리 모두는 ‘오롯한 당신’, ‘오롯한 나’이어야 한다. 생명을 지닌 인간으로서 우리는 모두 오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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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책을 읽었던 몇몇 사람들부터도 동성애자들을 범죄자 차별하듯 차별했고, 그 집단이 나머지 집단에 어떤 '피해'를 주는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동성애가 AIDS의 주범이라는 낙인이 비과학적이라는 김승섭 교수의 반박도(207~209p), AIDS 유병률이 동성애자들에게서 더 높게 나타나는 것이 사실 아니냐는 주장까지 설득하진 못한 것 같다.

 

남성 동성애-에이즈 연관성, 의학적 근거 나왔다

에이즈 감염자 다수가 남성 동성애자라는 역학조사결과가 국내 최초로 나왔다. 이에 따라 질병관리본부(질본) 등이 시행 중인 국가에이즈 예방정책의 획기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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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성소수자들이 이성애자들보다 자살 시도를 2.5배 많이 하고,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에 걸릴 확률이 1.5배 높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도(196p), 김승섭 교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언젠가는' 더 나아질 날을 꿈꾸는 게 전부인 것이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p.196-197.

미국 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판정 이후에도 일상 곳곳에 스며든 차별적 제도가 시정되고,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가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40여 년간의 싸움 덕분에, 다음 세대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 없이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한국의 성소수자들도요.

 

그래서인지 이런 아픔을 대하는 김승섭 교수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그는 더 이상 구체적인 처방을 당당한 목소리로 요구할 수가 없다. 그저,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의 옆에서 순교자적 동행을 약속하며, '저들'로 표상되는 추상적 대중 속에서 구체적으로 찔러 오는 혐오를 직시할 뿐이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p.218-219.

아무리 우아한 이론을 가져와도 혐오는 혐오이고, 어떤 낙인을 갖다 붙여도 사랑은 사랑이에요. 그래서 여러분이 혐오로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저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분명 그럴 거라고 저는 믿어요. 혐오의 비가 쏟아지는데, 이 비를 멈추게 할 길이 지금은 보이지 않아요....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 피하지 않고 함께 있을게요.

 


이것이 최선일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다. 추상적 대중 뒤에 숨은 구체적인 혐오와 싸워봐야 아무런 지지도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승섭 교수는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에서 신천지, 동성애자 등의 사회집단에 낙인이 부여되는 것이 문제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다른 패널들의 표정으로 보건대, 대중적으로 환영받는 발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저자가 연예인이었다면, 지금쯤 '아, 형, 쫌!'하며 소리 지르는 매니저가 한 명쯤 있지 않았을까.) 역시나 신천지 신도들이 얼마나 우리들에게 '피해'를 주었는지에 대한 분노가 그 배경에 있으니 말이다.

 

‘확진’도 무섭지만 ‘낙인’은 더 무서워 - 시사IN

지난 석 달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지금 이 시국에’ 신천지 종교 집회에 가서 예배를 본 중년 여성, 서울 자식 집에 올라온 대구·경북 지역 할머니, 제주도 맛집을 누빈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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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김승섭 교수는 정치 집단화된 성소수자들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도 그렇지 못한 신천지 신도들이나 재소자들에 대한 발언 또한 서슴지 않는데, 그 일관적인 소신에 비해 사회적-대중적 호응은 일관적이지가 않다. 우리 모두가 서로를 아프게 하면서도 서로가 서로에 의해 얼마나 더 아픈지 소리 지르며 싸우는 그런 '갈등'의 현장은, 일방적인 '투쟁'의 현장보다 훨씬 더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교수가 '아픔이 길이 되는' 방법으로 제시하는 로세토 공동체의 비전이, 사회적으로 연결될수록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산다는 구체적인 통계 자료에도 불구하고(256~261p), 공동체가 공유할 수 있는 '정의로운 공감 능력'의 정치적 슬로건으로서의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다소 동화같이 들리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p.295-296.

로세토 이야기는 어떤 공동체에서 우리가 건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개인이 맞닥뜨린 위기에 함께 대응하는 공동체, 타인의 슬픔에 깊게 공감하고 행동하는 공동체의 힘 얼마나 거대하고 또 중요한지에 대해서요.

 

<아픔이 길이 되려면>, p.303.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하나의 공동체가 공유할 수 있는 '대중적 정의'는, 구체적인 개별적 서사들에 근거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인문학적일 수 없다. 사회적 차별과 폭력, 소외로 인해 아프게 된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사실 우리가 정의롭다 믿는 신념이나 정책에 의해 아프게 된 사람들이라는 걸 떠올려보라.

낙태 금지법 시행 후 불법 낙태 시술을 받다 죽어간 한 해 500여 명이나 되는 루마니아 여성들(34p), 국민의 안전을 위해 '당연히' 봉사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교대 근무를 하며 수면 장애에 시달리는 43.2 퍼센트의 소방공무원들(143p), 일반인들에 비해 2.5배 더 많은 자살 시도를 한 성소수자들과(196p) 2배 더 높은 감염 질환 위험에 노출되는 재소자들(248p) 모두, 우리가 '정의로운 형벌' 내지, '정의로운 희생'이라 믿는 것에 희생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대학 시절 운동권 활동을 하며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마저 상처를 입었던 저자가(304p), "희망은 항상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그래서 참으로 아이러니하다(305p). 우리가 서로의 환경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이려면, 우리가 서로를 아프게 하고 죽게 한다는 사실마저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고, 그 상처의 '원인의 원인'을 찾는 탐색은 결국 마주 앉은 서로를 향할 수밖에 없다.

성소수자를 옹호하는 논리가 종종, 성도착증과 성적지향성을 구분하는, 그렇기에 성도착증은 차별하고 억압해도 된다는 암시적 논리로 흘러가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성도착증과 성적지향성 모두 선택할 수 없다는 점에선 동일하다. 사회에 '위협'이 되는가에 대한 담론만이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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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섭은 누구의 몸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까?

김승섭 교수가 공동체적 연대의 꿈을 놓지 못한다면, 그에겐 크게 세 가지 선택지만이 남게 될 것 같다. ① 기업이나 국가와 같이 구체적인 아픔의 원인을 찾아 보건정치적 투쟁을 계속하는 길, ② 유색인종을 그렇게도 싫어하면서도 이웃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설문에 답한 미국인들의 '최소한의 교양'(237~238p)과도 같은 추상적인 사회 윤리를 이야기하는 길, ③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가 서로를 '건강하게 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보건동화작가'의 길.

대학의 상아탑 뒤에 숨어 두 번째나 세 번째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저자가, (그 용감하고 변함없는 소신 때문에) 이미 첫 번째 길로 너무 많이 나아갔다는 걸 사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계속 간다면 저자는 언젠가 사회운동가의 커리어로 귀결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가 더 이상 재소자의 건강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는, 이 길을 걷는 모든 이들에게 요구되는 '대중적 윤리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대중적 윤리성'은 김승섭 교수가 이야기할 수 있는 몸과 아픔의 유형을 극적으로 제한할 것이다. 그는 그 길을 걷기 위해 몇 개 좌파 노조와 성소수자 단체의 답정너 연구가로 전락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는 이것을 학자로서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진보가 세월호를 이용해 먹고 보수가 천안함을 이용해먹듯, 이 집단 저 집단이 자신의 아픔을 강조하기 위해 김승섭 교수를 이용해 먹는 허망한 정치공학적 투쟁 가운데, 그는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

 

보수가 이용한 배 천안함(위), 진보가 이용한 배 세월호(아래) (출처: 민플러스 뉴스)

 

 

개인적으로 김승섭 교수가 완전히 다른 길을,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찾아내기만을 빈다. 김승섭 교수는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에서 새로운 이야기들을 발견해내고 있다. 불타는 소명에 소모되어가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 세월호 참사 현장에 가서 유족들에게 녹두죽을 먹이던 천안함 전사자 부모의 이야기.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은 달콤하고 명예롭다(Dulce et decorum est Pro patria mori)"는 오랜 거짓말에 속아 죽은 영웅들과 살아남은 죄인들의 나라를 지켜온 생존병장들의 이야기.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리뷰 대회 우수상 - 프로 파트리아 모리

 

김승섭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리뷰 대회 우수상 - 프로 파트리아 모리

아래 보르헤스(가 인용한 키플링)의 말로 시작하는 글은 문학동네가 주최한 김승섭 교수의 신간 리뷰 대회를 위해 쓴 리뷰입니다. 감사하게도 신형철 평론가님과 정혜윤 PD님께서 우수상으로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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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도 가해자도, 승자도 패자도 구분해낼 수 없는 이 혼란스러운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들은, 점점 더 보르헤스가 <독일 레퀴엠>에서 다루었던 나치즘의 비극적인 운명에 대한 이야기들을 닮아가고 있다.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 김승섭 교수는 머지않아 우리에게 들려줄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정말로, 아픔이 길이 되는 이야기를.


나치즘의 비극적인 운명을 이해하려 했던 보르헤스의 <독일 레퀴엠>

 

보르헤스 <알레프>, 인류의 '독일 레퀴엠'

보르헤스의 대표 단편집 중 하나인, <알레프>의 수록 작품들을 읽고 정리하고 있다. 최낙원 교수님의 글을 빌어 보르헤스를 무턱대고 읽기 가장 쉬운 방법에 대해, 그리고 보르헤스가 그 깊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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