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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섭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리뷰대회 우수상 - 프로 파트리아 모리

mayiread 2022. 3. 21. 18:14

 

 

아래 보르헤스(가 인용한 키플링)의 말로 시작하는 글은 문학동네가 주최한 김승섭 교수의 신간 리뷰 대회를 위해 쓴 리뷰입니다. 감사하게도 신형철 평론가님과 정혜윤 PD님께서 우수상으로 선정해주시고, 다른 사은품보다 값진 심사평을 써주셨습니다. 무용한 독서 생활에 값진 기억인지라, 리뷰와 심사평 전문을 함께 남깁니다.


프로 파트리아 모리

기묘하게도 보르헤스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승리를 얻을 수도 있고 재앙을 겪을 수도 있지만, 그 두 가지 허깨비를 똑같이 취급해야 해요." 왜일까. 김승섭이 피해자들의 승리를 외치기 때문일까. 아니면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재앙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런 건 다른 이들도 이야기해왔다. 지겹도록.

 

보르헤스의 말 - 교보문고

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 | 눈먼 보르헤스에게 말은 유일한 소통 방식말하기는 글쓰기 못지않게 내밀한 언어 형식1980년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여든의 나이로 대담을 위해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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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섭의 글을 빨려들듯 읽게 되는 건, 그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승리와 재앙을 대하는 우리의 잔혹하도록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그려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든 싸움에서 승자를 가려내려 하고, 우리의 승리는 상대의 재앙과 패배를 먹고 산다. 진보가 승리하려면 세월호 재난은 집권당의 재앙이어야 하고, 천안함 '패잔병'들에게 책임을 물어야만 대한민국군은 다시 승리할 수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세월호 침몰 사고(영어: Sinking of MV Sewol)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 경 대한민국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되어 침몰한 사고이다.[5] 세월호는 안산시의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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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피격 사건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글의 중립성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었습니다.주관적인 내용이나 감정적인 표현은 없는지, 고려할 가치가 있는 여러 관점이 편견 없이 공정하게 반영되었는지 확인해 주세요. (2015년 4월) 인양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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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과 전투를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이 공허하고 실체 없는 싸움에서도 살아남는다. 그리고 김승섭은 그들의 '살아남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허깨비를 마주하게 한다. 우린 살아남은 죄인들과 죽은 영웅들의 나라를 지켜왔다고. 우린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이 달콤하고 명예롭다(Dulce et decorum est Pro patria mori)는 오랜 거짓말에 속고 있었다고.

 

Dulce et Decorum Est by Wilfred Owen | Poetry Foundation

Bent double, like old beggars under sa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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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허상 뒤엔 무엇이 있는가. 김승섭은 다시 생존자들의 이야기로 답한다. 세월호 사건 현장에선 천안함 전사자의 부모가 유족들에게 녹두죽을 먹이고 있었다고. 로제토라는 동화적 비전에서 출발한 김승섭의 연구는, 이제 서로의 비극성을 계량하지 않는 '사려 깊은' 서사를 통해 더 구체적이고 치열해졌다.

 

[신형철의 뉘앙스]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이제 7년 정도 되니 당신조차 이렇게 말하네요. 세월호, 이제는 지겹다고요. 애덤 스미스가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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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읽는 사람을 뒤흔드는 김승섭의 힘은 그 '사려 깊음'에 있지 않다. 정치적·윤리적 갈등의 불구덩이 한가운데 뛰어드는 그의 야수성에 있다. 그는 노사분쟁과 남북갈등 속 죽은 영웅들의 나란히 선 장례식장 앞에서 혼란스러워하며, 질병의 '원인의 원인'은 다름아닌 마주 앉은 서로라는 걸 몸부림치며 보여준다.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는 승전보는 아무도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김승섭은 승리와 재앙에 눈멀어 서로를 아프게 하는 우리에 대해 계속 이야기해야만 한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 교보문고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 혐오발언, 구직자 차별, 고용불안, 참사… 사회적 상처는 우리 몸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 데이터가 말해주는 우리가 아픈 진짜 이유『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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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 교보문고

한국 사회는 이 비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 “세월호 참사와 천안함 사건은 아직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또다른 슬픔의 과거일 수도 있습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저자 김승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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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심사평 전문입니다. 부족하고 덕 없는 리뷰를 (김승섭 교수님을 위해) 읽으셔야 했던 신형철 평론가님께는 죄송한 마음이고, 제 리뷰에 대해 가장 많은 말과 평을 해주신 정혜윤 PD님께는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신형철 평론가님 심사평

2018년에, 타인의 슬픔을 공부해야 한다고 적은 책을 낸 후에, 저는 강연을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이 책은 슬픔 공부의 교과서가 아니라 수험생의 수기에 불과합니다. 진짜 교과서는 따로 있습니다. 김승섭 선생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4년 뒤 저는, 내게 자격이 있는가 의심하면서도, 그의 신간이 더 많이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만으로 리뷰대회 심사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응모작들을 읽고 참가자들도 같은 마음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리뷰대회 자체의 성공을 바라며 쓰인 글들 같았다고 할까요.

저자를 일러 “천안함과 세월호 모두에 깊숙이 탑승하고 있는 최초의 인물”이라고 쓰신 응모자는 정확한 문장으로 이 책의 동시대적 의의를 짚고 있었습니다. 저자가 ‘정치적·윤리적 불구덩이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야수성’을 가졌다고 평가한 응모자도 같은 점을 염두에 두신 것 같고요. 작년 여름 동생을 코로나19로 떠나보낸 응모자는 ‘살아남은 피해자’의 편에 서는 이 책으로부터 힘을 얻은 것으로 보여 다행스러웠습니다. 생선 가시에 대한 자신의 불안을 단서 삼아 생존자들의 감정에 다가서려 노력한 응모자의 글은 그 진솔함에 제 손을 내밀게 되었고요.

강연중에 그를 소개할 때마다 ‘저는 김승섭 선생님을 ○○합니다’라고 말할 필요가 있었는데 빈칸에 들어갈 적당한 말이 무엇일지 저 스스로도 모르겠어서 다양하게 말해왔습니다. 응원? (스포츠가 아닌데 말이죠.) 지지? (그가 정치인도 아니고요.) 존경? (그걸 바라진 않으실 것 같군요.) 그런데 이번 심사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문제는 ○○에 들어갈 말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것 앞에 있는 조사를 바꿔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김승섭‘을’ 할 게 아니라 김승섭‘과’ 해야 합니다. 사회적 외로움을 위해 싸우는 사람을 외롭게 해서는 안 되니까요.

 

 

정혜윤 PD님 심사평

프랑스의 재난 피해자들을 인터뷰하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당하게 된 일로 알게 된 모든 것을, 당신에게 알려드릴게요. 당신은 나보다 덜 슬프도록.” 이 말은 내가 연대에 대해서 들은 가장 가슴 뛰는 말이었다. 타인은 자신보다 덜 슬프기를 바라는 것, 이것이 많은 피해자들이 입을 여는 이유일 것이다. 이 피해자들이 김승섭 교수에게 입을 열었다. 그가 이런 책을 써준 덕분에 우리에게 어떤 일이 가능해졌을까? 우리 인간의 어리석음, 슬픔은 당해봐야 안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는 당하고도 그 일이 어떤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거듭거듭 당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당하지 않고도 아는 사람이다. 이 리뷰를 쓴 많은 분들은 피해자들의 사무치는 말들에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였다. 나는 리뷰를 쓴 많은 분들이 이미 현명한 사람이 되는 길에 올라섰다고 느낀다. 당해보지 않고도 알게 된 것이 적지 않으므로. 그 알게 된 것 때문에 자신을 바꾸려고 하므로. 우리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달라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먼저 겪은 자들의 목소리를 필요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상 수상작 ‘천안함과 세월호 사이에서 나는 어디에 있었나’를 비롯한 많은 글들이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자신의 위치를 생각해보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질문한 다음 독자들은 움직인다. 피해자의 곁으로, 고통받는 사람 곁으로, 숫자가 아니라 사람을 보는 곳으로. (세상은 지금도 숫자를 보느라 여념이 없다. 코로나 확진자 수 몇 명, 사망자 수 몇 명)


우수상을 수상한 pr**y 님의 글 속에 있는 역지사지도 좋았다. ‘내가 만약 그런 사고를 당했다면?’ 그 입장 바꾸기의 결론은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ku**247님은 코로나 유족이다. 유족의 한 사람으로서 다른 유족들의 목소리가 있는 책을 읽는 마음은 어땠을까 싶다. 아마 작은 위안이라도 위안을 구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찾으려고 했을 것이다. po**per님이 글에서 언급한 ‘세월호 사건 현장에서 천안함 전사자의 부모가 유족들에게 녹두죽을 먹이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내가 앞에서 말한 ‘연대’의 가슴 아린 이미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질병의 원인은 ‘다름 아닌 마주앉은 우리 서로’라는 것이다. 이 모든 재난과 슬픔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변하려고 움직이는 사람이 그토록 소중하다.

재난은 거듭거듭 돌아오고 세상엔 늘 슬픈 사람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다만 이런 읽기와 듣기, 리뷰 들을 통해서 우리들은 조금씩 조금씩 사람이 살 만한 곳,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이 있는 세상을 향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솔직한 리뷰는...

사실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가 남기는 인상은 단 하나입니다. 안타깝다는 것. 그것도 김승섭 교수가. 더 차별받고, 더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온 김승섭 교수가 이제는 스스로 아픈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글에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주변의 건강 걱정을 뒤로 하고, 연구 대상자들 근처에 원룸까지 얻어, 문득문득 떠오르는 고통스러운 이미지들이 주는 PTSD를 떨쳐내가며, 직접 사비를 털어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김승섭은 자신의 소명에 의해 소모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김승섭은 목공이라는 취미를 찾았습니다. 꼭 소명 밖의 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전 김승섭 교수가 자신을 소모시키는 그 소명에서 자유로워지길 간절히 빕니다. 사실 정 PD님께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해주신, "질병의 '원인의 원인'은 다름아닌 마주 않은 서로"라는 비관적인 생각은, 김승섭 교수가 하고 싶었을 이야기는 아니었을 겁니다. 김승섭 교수는 로제토 공동체를 꿈꾸던 낭만적이면서도 진취적인 사람이니까요. 김승섭은 분명 우리에게 더 아픈 사람들을 더 잘 돌아보자고, 구체적이고 행동주의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리뷰는 사실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라는 책의 목소리를 충실히 담아낸 리뷰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를 아프게 하는' 우리의 초상이 정 PD님의 시선을 끌었다면, 그건 피해자와 가해자를 나누는 서사가 사실 승리와 패배를 나누는 서사와 그리 멀지 않다는 인식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래엔 피해자들이 이길 수 있으리라는 승리의 꿈은 변희수 하사를 포함해 아무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은 가해자들의 패배를 욕망하는 분노의 꿈이 되긴 쉽습니다. 세월호의 아픔을 이용해먹는 진보의 꿈도, 천안함의 비극을 이용해먹는 보수의 꿈도, 이런 분노의 꿈이긴 매한가지죠. 그리고 분노의 꿈은 우리를 소모시킵니다. 아주 빠르게.

 

보수가 이용한 배 천안함(위), 진보가 이용한 배 세월호(아래) (출처: 민플러스 뉴스)

 

 

김승섭 교수가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이야기에 다가갔듯, 서로를 아프게 하는 가해자로서의 우리들의 이야기에도 다가와주길 어봅니다. 보르헤스가 나치 전범의 입을 빌어 '우리는 유대주의에게 폭력과 칼에 대한 믿음을 가르쳤다'라고 말할 때의 울림은, 아무런 소모적 타자화 없이도 읽는 모든 이를 '폭력과 칼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보르헤스의 서사에서 우리 모두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고, 오늘의 승자이자 내일의 패자입니다.

 

보르헤스 <알레프>, 인류의 '독일 레퀴엠'

보르헤스의 대표 단편집 중 하나인, <알레프>의 수록 작품들을 읽고 정리하고 있다. 최낙원 교수님의 글을 빌어 보르헤스를 무턱대고 읽기 가장 쉬운 방법에 대해, 그리고 보르헤스가 그 깊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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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생존장병들을 군사법정에 세워 총살해야 한다고 외치는 이들의 마음 속에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대한민국은 승리해야만 한다'라는 뒤틀린 절박함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린 그들의 확증편향과 편견에 대한 심리학적 (혹은 정신병리학적) 낙인보다, 그들의 패배에 대한 극적인 두려움과 승리에 대한 처절한 집착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서사를 필요로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사고 방식도 사실 그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음을 깨달을 때에만, 그래서 우리가 오늘의 가해자이자 내일의 피해자임을 깨달을 때에만, 우리는 세월호 사건 현장에서 유족들에게 녹두죽을 먹였던 천안함 전사자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로제토 공동체'라는 동화 같은 꿈에서 시작해, '생생한 현실에 뿌리박은 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어 온 김승섭 교수를 온 마음으로 응원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신형철 평론가님의 바람처럼) 외롭지 않기만을 빕니다.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후주

저는 사람들 사이의 이해관계에 따른 대립이 더욱 첨예해지기를 바랍니다. 다만 그 대립이 정치적 선동으로 인한 공허한 충돌이 아니라, 구체적인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생한 현실에 뿌리박은 갈등이기를 바랍니다. 그런 갈등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그런 진통을 겪지 않고 생겨나는 대안은 현실에서 힘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 김승섭 교수님의 목공품 후기

위의 리뷰대회에 대해 거의 잊고 있을 때쯤, 출판사 난다의 편집자분께서 보내주신 편지와 손수건, 그리고 김승섭 교수님께서 손수 만드신 것으로 보이는 '모니터 받침대'가 배송되어 왔습니다. 원래 책장을 만드시려다가 모니터 받침대로 (아주 현명하고 현실적으로) 급선회하신 것 같네요.  

책장이 될 것이었다가 모니터가 받침대가 된 무엇 (왼쪽) & 편집자께서 보내주신 편지와 손수건

 

곧 문학동네 북클럽의 '프리미엄강연페스티벌'에도 출연하시는 것 같던데, 아무쪼록 여러 독자들의 응원과 지지 받으시며 외롭지 않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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