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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인터뷰집, <헤밍웨이의 말> #2 - 헤밍웨이에게 '진실된 글'이란?

mayiread 2022. 4. 27. 22:33

 

 

 

지난 포스트에 이어, 헤밍웨이의 인터뷰집 <헤밍웨이의 말>을 정리해보고 있다. 책을 번역하신 권진아 선생님의 서문 대로, '마초 셀러브러티' 뒤에 숨겨진 백전노장 작가로서의 헤밍웨이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이 목표인데, 이를 위해 세 가지 질문에 차례로 답하는 포스트를 연재 중이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해 다뤄보겠다.


<헤밍웨이의 말> #1 - 마초 셀레브러티를 넘어서 (이전 포스트)
<헤밍웨이의 말> #2 - 헤밍웨이에게 '진실된 글'이란? (이번 포스트)
<헤밍웨이의 말> #3 - 헤밍웨이에게 '문체'란? (다음 포스트)
<헤밍웨이의 말> #4 - 헤밍웨이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을까?

 

#1 마초 셀러브러티를 넘어서

 

헤밍웨이 인터뷰집, <헤밍웨이의 말> #1 - 마초 셀러브러티를 넘어서

헤밍웨이에 대해 알려진 사실들을 떠올려보면, 대학 교과서나 마케팅 전단에서 본 것들이 대부분이다.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 수상. 칵테일 다이키리를 즐겨 마심. 간결하고 생략이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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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헤밍웨이에게 '문체'란?

 

헤밍웨이 인터뷰집, <헤밍웨이의 말> #3 - 헤밍웨이에게 '문체'란?

헤밍웨이의 인터뷰집 <헤밍웨이의 말>을 통해 '마초 셀러브러티' 이미지에 가려진, 백전노장 작가로서의 헤밍웨이의 모습을 살펴보려 하고 있다. '진실된 글'에 대한 헤밍웨이의 생각을 다루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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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헤밍웨이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을까?

 

헤밍웨이 인터뷰집, <헤밍웨이의 말> #4 - 헤밍웨이의 자살에 대해

헤밍웨이의 진솔하고 수줍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인터뷰집, <헤밍웨이의 말>을 읽어보고 있다. 몇몇 유명 단편에서 만날 수 있는 유난히 생략 많고 불친절한 문체 때문에 여러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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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된' 글에 대해

글을 대하는 헤밍웨이의 태도는 사뭇 진지하다. 헤밍웨이는 인터뷰 내내 글쓰기에 대해 어렵사리 말을 꺼내고, 그때마다 '진실된', '정직한' 글에 대해 이야기한다.

 

<헤밍웨이의 말>, 73p

내가 이야기할 때는 그냥 이야기예요. 하지만 글로 쓰면 그건 영원히 진심이죠.

<헤밍웨이의 말>, 53p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은 ... 절대적으로 진실한 책을 쓰려는 시도로 쓴 겁니다. ... 그걸 쓰고 나서 두 단편 <킬리만자로의 눈>과 <프랜시스 매컴버의 짧고 행복한 생애>를 썼어요. 한 달간의 긴 사냥 여행을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에서는 진실한 기록으로 쓰려고 했고, 같은 여행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으로 그 단편들을 만들어낸 거죠.


그렇다면 헤밍웨이가 쓰려 한 그 '절대적으로 진실한' 책,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은 도대체 어떤 책이었을까.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 Green Hills of Africa>은 헤밍웨이가 한 달간 아내와 함께 갔던 아프리카 사냥 여행을 다룬, 소설이 아닌 '여행 에세이'이다.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은 당시 평단으로부터도, 독자들로부터도 그다지 열광적인 반응은 얻지 못했는데, 그 때문인지 안타깝게도 국내에 번역된 출판물이 없다.

 

Green Hills of Africa - YES24

Green Hills of Africa is Ernest Hemingway`s lyrical journal of a month on safari in the great game country of East Africa, where he and his wife ...

www.yes24.com

헤밍웨이와 폴린 파이퍼
헤밍웨이와 폴린 파이퍼
헤밍웨이와 함께 아프리카 여행을 갔던 두 번째 아내 폴린 파이퍼(Pauline Pfeiffer). 경제적 여유가 있었기에 헤밍웨이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줬지만, 정작 헤밍웨이는 그녀의 부유함이 자신을 게으르게 만들었다며 원망했다고. (출처: Wikipedia, Time Colonist)



다행히 헤밍웨이의 아들인 패트릭 헤밍웨이가 쓴 서문이 책의 성격을 잘 요약해주는데, '절대적으로 진실한 책을 쓰려는 시도'라는 말이 그대로 반복되는 것으로 보아, 패트릭이 서문의 원고를 아버지에게 검사(...) 맡은 것이 아닐까 싶다.

 

<Green Hills of Africa>, Foreward by Patrick Hemmingway. 번역은 필자.

Unlike many novels, none of the characters or incidents in this book is imaginary. ... The writer has attempted to write an absolutely true book to see whether the shape of a country and the pattern of a month's action can, if truly presented, compete with a work of the imagination.

대다수의 소설들과 달리,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사건들은 그 무엇도 가공의 것이 아니다. ... 저자는 절대적으로 진실한 책을 써, 한 나라의 형태와 한 달 동안의 행동 양식을 진실되게 제시하면, 상상력의 산물과 경쟁할 수 있을지 알아보고자 했다. 

 

쉽게 말해 헤밍웨이가 자신의 아프리카 사냥 여행에서의 경험을 꾸밈없이, 진솔하게 전달하려 했다는 것.


그런데 잠깐, 단순히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작가를 뛰어난 작가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헤밍웨이가 독특한 작가가 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인데, 자세한 묘사를 통해 경험을 재현하려 하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헤밍웨이는 다소 불친절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철저한 생략에 의존한다.

 

<헤밍웨이의 말>, 57~58p

... 난 늘 빙산 원칙에 따라 글을 쓰려고 노력해요. 우리 눈에 보이는 부분마다 물 밑에는 8분의 7이 있죠. 아는 건 뭐든 없앨 수 있어요. 그럴수록 빙산은 더욱 단단해지죠. 그게 보이지 않는 부분입니다. ... 독자에게 경험을 전달하는 데 불필요한 모든 것을 없애려고 노력했어요. 독자들이 뭔가를 읽고 나면 그게 그들 경험의 일부가 되고 정말로 일어났던 일처럼 보일 수 있도록. 이건 굉장히 힘든 일이고, 난 정말로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다면 궁금해지는 건, 이토록 불친절하고 철저한 생략을 통해 어떻게 독자들에게 '정말로 일어난 일' 같은, '내 경험의 일부인 것 같은' 그런 진실된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인터뷰어도 같은 것이 궁금했는지 노련하게 다음과 같은 문답을 끌어낸다.

 

<헤밍웨이의 말>, 59~60p

플림프턴
아치볼드 매클리시가 독자들에게 경험을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선생님께서 <캔자스시티스타> 시절 야구 경기를 취재하면서 개발한 방법이라고 하더군요. 간단히 말해서 경험은 내밀히 간직된 사소한 사항들을 통해 전달되는데, 그게 독자들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만 의식하고 있던 것을 의식하게 해서 전체를 암시하는 효과를 가진다는 거요.

헤밍웨이
... 아치가 기억하려 한 건 ... 내가 ...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지만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을 찾고 있었다는 겁니다. 글러브가 어디에 떨어질지 돌아보지도 않으면서 휙 내던지는 외야수의 동작이나 권투 선수의 운동화 고무밑창 아래서 링 바닥의 송진이 내는 끽끽거리는 소리 ... 블랙번(=미국 권투 선수)의 이상한 피부색과 오래된 면도칼 상처들, 그의 이력을 알기도 전에 휙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거 알잖아요. 이런 것들이 알기도 전에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들이죠.


​헤밍웨이의 말을 그대로 믿어보자면, 그는 이야기의 시·공간적 맥락은 과감히 생략하고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그의 '경험의 일부'가 되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작은 것들에 집중할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다. 정말로 그럴까? 헤밍웨이의 글을 직접 보러 가보자.

 

 

 

<킬리만자로의 눈> 속 '칠푼이 이야기'

​헤밍웨이가 아프리카 사냥 여행 후 썼다고 밝힌 작품 중 <킬리만자로의 눈>이라는 단편을 보면 주인공이 예전에 머물렀던 곳에서 있었던 '칠푼이 이야기'를 떠올리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 언제 어디서 있었던 일인지 구체적인 언급도 전혀 없고, 이 이야기를 떠올리는 구체적인 맥락이나 이유도 불분명하다.

킬리만자로의 눈이 실린 에스콰이어 지
에스콰이어 지에 실린 <킬리만자로의 눈> (출처: 에스콰이어 클래식)


그나마 지명 비스무리하게 나오는 것이 '포크네 농장(the Forks)'이라는 명칭인데, 사실 성 씨 이외에 알 수 있는 게 전혀 없고, 일이 있었던 지역을 가리키는 단어도 '그곳(out there)'이 전부이다. 이야기가 갑자기 나오는 이유? 부유한 아내 때문에 허송세월하며 글쓰기를 게을리한 과거에 대한 회한이 담겨 있다는 게 연구가들의 설명인데, 그거야 연구가들이니 아는 것이고, 글에서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에서 고배를 마신 헤밍웨이가 자신의 아내를 원망하는 마음을 담았다는 견해도 있다.)

​마치 단편 속의 단편 같은 아래 내용이 전부인데, 다소 길지만 이게 '칠푼이 이야기'의 전부이니 한 번 인용해보겠다.

 

<노인과 바다>, 열린책들, 153~154p.

당시 칠푼이 심부름 소년은 농장에 혼자 남겨졌고 아무도 건초를 가져가지 못하게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런데 과거에 소년이 포크네 농장(the Forks)에서 일할 때 그를 마구 두드려 팼던 늙은 놈이 건초를 좀 가져가려고 들렀다. 소년은 거절했고 노인은 또다시 매질을 하겠다고 위협했다. 소년은 주방에서 소총을 가져와 헛간으로 들어가려는 노인을 쏘았다. 사람들이 농장에 돌아왔을 때 그는 죽은 지 일주일이나 되어 가축 우리에 얼어 있었고 개들이 그 시체의 일부를 먹어 버린 후였다. 그들은 남은 시체를 담요로 싸서 썰매 위에 올려놓고 밧줄로 묶었다. 칠푼이 소년은 썰매를 잡아당기는 일을 도와주었다. 사람 둘이 스키를 타고서 그 썰매를 길 위로 끌었고 60마일을 걸어 내려가서 마을로 들어가 소년을 신고했다. 그는 자신이 체포되리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자신이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했고 같이 간 사람들을 친구로 여겼으며 상을 받으리라 예상했다. 그가 죽은 노인을 끌고 가는 데 도움을 준 것은 모든 사람에게 그 노인이 나쁜 사람이고 자기 것이 아닌 건초를 훔치려 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경관이 소년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자 그는 너무나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러고서 그는 울기 시작했다. 그건 그가 나중에 쓰려고 남겨 두었던 이야기였다. 그는 그 지방(out there)에 대하여 좋은 단편소설을 스무 편은 쓸 수 있었는데 하나도 쓰지 못했다. 왜?

 

읽는 사람으로서는 뭔가 불분명한 글로 느껴진다. 칠푼이는 왜 혼자 남겨졌는데? 사람들은 어디에 갔다 온 거지? 스키랑 썰매를 타고 다닌다고? 여기가 어딘데? 애초에 노인은 왜 건초를 가져가려 한 거고? 답을 찾을 수 없는 온갖 의문들만 뭉게뭉게 떠오른달까. ​

그런데 헤밍웨이는 이런 질문들에는 답변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마을 사람이 진짜 있었던 일을 말해주듯, 과묵하고 건조하게 이야기를 써 내려갈 뿐이다. 고작 건초에 목숨을 잃은 늙은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범죄자가 된 칠푼이 소년. 상을 받으러 가는 줄 알고 시체 운반을 도운 그를 살인범으로 신고해야 했던 마을 사람들. 칠푼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체포를 당하며 서럽게 우는 장면에 이르면, 작가밖에 모르는 신기한 동식물 이름이나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색상 이름을 늘어놓는 흔한 묘사 하나 없이도, 하얀 눈 위의 얼어붙은 시체 옆에서 억울하게 우는 소년의 모습을 꽤나 현장감 높게, 하지만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된다.

​마치, 지나는 길에 소란스럽기에 기웃거리며 들어보니 자세한 사연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뭔가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는 걸 호기심 반 동정심 반으로 멀리서 바라만 보는 기분이랄까. 사실 살면서 겪는 대부분의 일들이 그 내막을 알지도 못한 채 의아해하며 지나가야 하는 경험임을 생각해보면, '독자들의 경험의 일부가 되고 정말로 일어났던 일처럼 보이는' 이야기를, 헤밍웨이는 건조하고 불친절하지만 현장감 높은 글을 통해 나름 잘 전달했다고 볼 수 있다.

 

'진실한 허구'로서의 소설

​그렇다면 헤밍웨이는 이런 '진실한' 글을 쓰기 위해 정말로 일어났던 일이나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을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헤밍웨이의 (쪼오끔 재수 없을 정도로 자랑스러운) 대답은 '아니오'이다.

 

<헤밍웨이의 말>, 79p

작가는, 적어도 좋은 작가라면, 묘사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개인적이고 비개인적인 지식에서 꾸며내거나 만들어내죠. ... 아는 지식에서 꾸며낸다는 건 진실한 허구를 만든다는 겁니다.

 

굳이 진짜로 있었던 일이 아니더라도, 실화만큼이나 진실한 허구를 만들어내는 것이 좋은 작가의 능력이라는 것.



​헤밍웨이는 한술 더 떠서, 예술이 '진실보다 더 진실한 것'이 되어야 한다 말하며, 작가는 단순히 재현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의 생명력을 지닌 창조물을 만들기 위해 글을 쓴다고, 자신의 작가로서의 소명 의식을 (다소 히스테리컬 하게) 드러낸다.

 

<헤밍웨이의 말>, 64~65p

플림프턴
... 예술의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왜 사실 그 자체보다 사실의 재현이 필요한 걸까요?

헤밍웨이
왜 그런 걸로 골치 아파합니까? 이제껏 일어난 일들, 있는 그대로의 것들, 알고 있는 모든 것과 알 수 없는 모든 것으로부터 작가는 창작을 통해 뭔가를 만듭니다. 그건 재현이 아니라, 살아 있고 진실한 그 어떤 것보다도 진실하고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며, 작가는 그걸 살아 있게 하고, 충분히 잘 만들 경우에는 불멸을 선사해요. 그게 바로 글을 쓰는 이유지 알려진 다른 어떤 이유가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온갖 이유인들 어떻습니까?

 

권투 중인 조지 플림프턴
헤밍웨이의 히스테리(?)를 받아주던 인터뷰어 조지 플림프턴. 헤밍웨이처럼 권투를 좋아해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출처: The Fight City)

 


독자의 마음에 (영원히 남을지도 모르는) 어떤 진실한 경험을 불러일으키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가히 금욕적이라 할만한 절제로 다듬어진, 생략 많고 불친절한, 하지만 그래서 더 진짜 같은 이야기를 쓰는 것이 헤밍웨이의 '진실한' 글의 조건이었달까.

​눈치챘겠지만, 이렇듯 '진실된' 글을 쓰는 그의 절제되고 금욕적인 스타일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의 '문체'에 대해 궁금해하는데, 인터뷰에서도 관련된 문답이 꽤 많이 등장한다. 헤밍웨이의 답은 '문체'란, 독창성이나 개성을 나타내는 스타일이 아니라, 진실된 글을 쓴다는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규율'에 불과하다는 것인데,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연재글에서 다뤄보겠다.

 

 

 

#3 헤밍웨이에게 '문체'란?

 

헤밍웨이 인터뷰집, <헤밍웨이의 말> #3 - 헤밍웨이에게 '문체'란?

헤밍웨이의 인터뷰집 <헤밍웨이의 말>을 통해 '마초 셀러브러티' 이미지에 가려진, 백전노장 작가로서의 헤밍웨이의 모습을 살펴보려 하고 있다. '진실된 글'에 대한 헤밍웨이의 생각을 다루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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