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에 대해 알려진 사실들을 떠올려보면, 대학 교과서나 마케팅 전단에서 본 것들이 대부분이다.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 수상. 칵테일 다이키리를 즐겨 마심. 간결하고 생략이 많은 하드보일드 문체. 글에서 드러나는 것보다 숨겨진 것이 더 많아야 한다는 '빙하 이론(Iceberg Theory)' 주창.
출판사와 칵테일 바, 영문학 교수님이 좋아할 것 같은, 이런 건조하면서도 상업적인 정보 이외에도 그만큼 많이 소비된 이미지가 '마초', '파파' 헤밍웨이인데, 그 대표적인 예시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등장하는 헤밍웨이의 모습이다.
영화 속 마초 셀러브리티, 헤밍웨이
<미드나잇 인 파리>는 할리우드 각본가인 '길'이 약혼녀와 함께 파리로 여행을 떠났다가, 우연한 계기로 1920년대로 시간 여행을 해 헤밍웨이를 비롯한 유명 문호들을 만난다는 본격 '영문학 시간 여행' 영화이다.
주인공 '길'은 약 400페이지 분량의 소설을 하나 쓰는데, 이 엄청난 '영문학 시간여행'을 통해 만나게 된 헤밍웨이에게 자신의 글을 읽어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길은 헤밍웨이의 이름을 듣자마자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그의 작품들을 '사랑한다'며 문학에 대한 대화를 하다가 끝내 수줍게 부탁을 하는데, 헤밍웨이는 글을 읽어보지도 않고 답을 해준다. '마음에 안 든다'라고.
그의 이야기인즉슨, 못 썼으면 못 썼으니 마음에 안들 것이고, 잘 썼으면 질투가 나서 더 마음에 안들 것이므로, 경쟁심 많은 다른 작가의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정도로 끝냈다면 참 카리스마 있고 좋았을 텐데...
그 말을 들은 길이 헤밍웨이에게 '선생님과는 경쟁이 안 된다'라는 식으로 말하자 소심하고 남자답지 못하다며 야단을 치고, 자신 있게 최고의 작가라 이야기하라며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친다. 그래 놓고는 본인이 있는 한 최고의 작가가 되긴 어려울 것이라며, 불만 있으면 나가서 한 판 붙자고 엄포까지 놓는다.
이후에 다시 등장하는 헤밍웨이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전쟁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이야기를 시작한 헤밍웨이는 명언 제조기 같은 느낌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잊게 해주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말이 '사랑'이지, 사실은 여자와 잠자리를 갖는(make love) 이야기이다. 결국 영화감독인 우디 앨런이 그리고자 했던 헤밍웨이의 모습은 주먹다짐, 전쟁 무용담, 여자 이야기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마초 셀러브리티의 모습이었던 것.
물론, 실제 그의 삶의 여러 행적에서 폭력적이고 마초적인 면모가 드러나기에 우디 앨런의 묘사가 결코 잘못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거의 망나니 수준의 언론 안팎 일화들을 보면 많이 봐준 편에 속한달까...
'마초' 이미지를 넘어, <헤밍웨이의 말>
하지만 헤밍웨이 말년의 인터뷰에서 볼 수 있는 그의 모습은 딱히 마초라고도, 셀러브리티라고도 하기 어렵다. 마음산책이 출간하고 권진아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헤밍웨이의 말>에는 그래서인지 '은둔 시절의 마지막 인터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마음산책의 인터뷰 총서 '말' 시리즈에 대해서는 <보르헤스의 말> 관련 포스트에 짧게 소개해두었으니 관심이 있다면 링크를 참조.)
남자답게 자신이 최고의 작가라 이야기하라며 호통을 치던 영화 속 헤밍웨이와 달리, 인터뷰 속의 헤밍웨이는 글쓰기에 대해 말하는 게 '겁이 난다'라며 수줍게 털어놓는다.
<헤밍웨이의 말>, 121p
그런 체격의 남자에게서 나온다기엔 매우 놀라운 부드럽고 높은 목소리로 앉으라고 정중하게 권했다. 거의 고통스러울 정도로 수줍은 행동이었다. ... 그러고는 주저하는 어조로 글쓰기에 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다,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그걸 다 죽여버리는 짓이다, "뭔가 빼앗기게 된다" "사라져버린다" "겁이 난다"라는 익숙한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헤밍웨이의 말>, 124p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하면 말문이 막혀요. 뭐라도 말해야 한다면 그건 분명하게 글로 써야 합니다.
헤밍웨이에게 글을 쓰는 일은 결코 '내가 최고다!'라고 허장성세를 부릴 수 있는 일도, 그럴싸하지만 어딘가 위선적인 명언이나 쏟아내며 대신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는 작가는 말은 아끼고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하며, 명언 제조기 같은 작가들의 인터뷰집을 읽고는 "어찌나 자기 확신이 넘치는지. 맙소사!"라고 경악하기도 한다(129p).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 작가로서의 삶은 '지루하고 가차 없고 무자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헤밍웨이의 말>, 61p
생존하는 것, 명예―구식이지만 늘 중요한 그 단어―롭게 생존하는 것은 작가에게는 언제나 어렵고 늘 중요한 일입니다. 오래가지 못하는 작가들은 늘 더 사랑받아요. 그들이 죽기 전에 끝내야 한다고 믿는 뭔가를 이루기 위해 길고 지루하고 가차 없고 무자비한 싸움을 하는 걸 누구도 보지 못했으니까. 죽거나 일찍 쉽게 온갖 그럴듯한 이유로 그만두는 작가들은 이해할 만하고 인간적이니까 선호받죠. 실패와 잘 위장된 비겁함은 더 인간적이고 더 사랑스럽거든요.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을 밝히면서도 '작가로서의 삶이란 기껏해야 외로운 삶'이라고 말하고, 수상 후의 인터뷰에서는 작가가 아닌 글쓰기를 존경한다고 말하며 (자신을 포함해) 작가란 그저 글쓰기의 도구일 뿐이라는, 작가로서의 자부심과는 거리가 먼 생각만을 드러낼 뿐이다. 창작가로서의 자부심보다는 노동자로서의 근면함이 느껴진달까.
<헤밍웨이의 말>, 76p
난 글쓰기를 굉장히 존경합니다. ... 작가는 글쓰기의 도구로서가 아니고는 전혀요. 작가가 삶에서 의도적으로 은퇴하거나 어떤 결함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은퇴한다면, 그 작가의 글은 보통 쇠퇴하게 돼요. 사용하지 않는 팔다리처럼.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 후에도 여전히 처음 글을 쓸 때처럼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리게' 하루 400 단어에서 700 단어 정도를 쓰는 헤밍웨이가 '글이 빠르거나 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라고 평하는 인터뷰어의 말을 듣고 있자면(78p), 전쟁 무용담이나 여자 이야기를 늘어놓는 마초의 모습보다는, 항상 긴장한 모습으로 마치 고행을 하듯 글을 쓰는, 한없이 진지하고 수줍은 노작가의 모습만이 그려진다.
권진아 선생님께서 <헤밍웨이의 말>을 '마초 셀러브리티를 넘어서'라는 제목의 서문으로 여신 것은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연재할 3개의 포스트에서 '마초 연예인'이 아닌 '진실된 작가'로서의 헤밍웨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인터뷰집 <헤밍웨이의 말> 속 그의 목소리를 통해 아래 질문들에 나름의 답을 찾아보는 것이 목표이다.
<헤밍웨이의 말> #2 - 헤밍웨이에게 '진실된 글'이란?
<헤밍웨이의 말> #3 - 헤밍웨이에게 '문체'란?
<헤밍웨이의 말> #4 - 헤밍웨이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을까?
#2 헤밍웨이에게 '진실된 글'이란?
#3 헤밍웨이에게 '문체'란?
#4 헤밍웨이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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