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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인터뷰집, <헤밍웨이의 말> #3 - 헤밍웨이에게 '문체'란?

mayiread 2022. 4. 29. 17:24

 

 

 

헤밍웨이의 인터뷰집 <헤밍웨이의 말>을 통해 '마초 셀러브러티' 이미지에 가려진, 백전노장 작가로서의 헤밍웨이의 모습을 살펴보려 하고 있다. '진실된 글'에 대한 헤밍웨이의 생각을 다루었던 저번 글에 이어, 이번에는 '문체'에 대한 헤밍웨이의 생각을 들어보려 한다.


<헤밍웨이의 말> #1 - 마초 셀레브러티를 넘어서
<헤밍웨이의 말> #2 - 헤밍웨이에게 '진실된 글'이란? (이전 포스트)
<헤밍웨이의 말> #3 - 헤밍웨이에게 '문체'란? (이번 포스트) 
<헤밍웨이의 말> #4 - 헤밍웨이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을까? (다음 포스트)

 

#1 마초 셀러브러티를 넘어서

 

헤밍웨이 인터뷰집, <헤밍웨이의 말> #1 - 마초 셀러브러티를 넘어서

헤밍웨이에 대해 알려진 사실들을 떠올려보면, 대학 교과서나 마케팅 전단에서 본 것들이 대부분이다.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 수상. 칵테일 다이키리를 즐겨 마심. 간결하고 생략이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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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헤밍웨이에게 '진실된 글'이란?

 

헤밍웨이 인터뷰집, <헤밍웨이의 말> #2 - 헤밍웨이에게 '진실된 글'이란?

지난 포스트에 이어, 헤밍웨이의 인터뷰집 <헤밍웨이의 말>을 정리해보고 있다. 책을 번역하신 권진아 선생님의 서문 대로, '마초 셀러브러티' 뒤에 숨겨진 백전노장 작가로서의 헤밍웨이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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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헤밍웨이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을까?

 

헤밍웨이 인터뷰집, <헤밍웨이의 말> #4 - 헤밍웨이의 자살에 대해

헤밍웨이의 진솔하고 수줍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인터뷰집, <헤밍웨이의 말>을 읽어보고 있다. 몇몇 유명 단편에서 만날 수 있는 유난히 생략 많고 불친절한 문체 때문에 여러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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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는 작가가 일하는 방식일 뿐

헤밍웨이의 '하드보일드'한 문체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평이 많은데, 헤밍웨이도 자신의 절제된 문체에 대한 이런 세간의 미적 평가를 의식했는지, 낚시를 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헤밍웨이의 말>, 91p

스타일(Style=문체)은 그냥 쓸모없는 개념이 아니에요. 그건 해야 될 일이 되게 만드는 방식이죠. ... 제대로 된 방식으로 하면 보기 좋다거나 아름답다거나 하는 사실은 부차적일 뿐입니다.

 

낚시를 하는 헤밍웨이
헤밍웨이는 문체란 고기를 잘 낚기 위한 방식에 불과하다는 듯이 말한다. (출처: Sport Fishing)



여기서 '해야 될 일'이란 헤밍웨이가 그토록 강조했던 '진실된 글'을 쓰는 것일 텐데, 다른 이들이 찬양해 마지않는 자신의 문체를 '그저 내가 일을 하는 방식일 뿐이다'라고 평하는 헤밍웨이의 말을 듣고 있자면, 그에겐 글을 쓰는 일이 '미적인' 일이 아니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그의 하드보일드한 문체와 관련해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빙산 원리(the Iceberg Principle)' 또한, 영감에 휩싸여 쏟아낸 문장들의 개성이나 특징이라기보다는, 진실된 경험의 재현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위해 엄격히 지켜야만 하는 규율과도 같은 것으로 보인다.

 

<헤밍웨이의 말>, 57~58p

... 난 늘 빙산 원칙에 따라 글을 쓰려고 노력해요. 우리 눈에 보이는 부분마다 물 밑에는 8분의 7이 있죠. 아는 건 뭐든 없앨 수 있어요. 그럴수록 빙산은 더욱 단단해지죠. 그게 보이지 않는 부분입니다. ... 독자에게 경험을 전달하는 데 불필요한 모든 것을 없애려고 노력했어요. 독자들이 뭔가를 읽고 나면 그게 그들 경험의 일부가 되고 정말로 일어났던 일처럼 보일 수 있도록. 이건 굉장히 힘든 일이고, 난 정말로 열심히 했습니다.

 

 

 

규율(discipline)과 신명(juice)

실제로 헤밍웨이는 글을 쓰는 일에서 '규율(discipline)'이 지니는 중요성을 굉장히 강조한다. 그는 작가를 우물에 비유하고는, 우물이 마르도록 물을 다 퍼내고 다시 차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규칙적인 양을 퍼내는 것이 낫다고 말하며(36 ~ 37p), 작가가 규율을 '획득해야만' 한다고 말한다(29p). 실제로 헤밍웨이는 매일 해가 뜨자마자 일어나 정오까지 규칙적으로 글을 썼고, 매번 전날 글을 멈춘 지점까지 다시 읽어보고는 만족할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쓰는 일을 반복했으며(30p), 심지어는 자신이 그날 쓴 글의 글자 수를 차트에 기록하기까지 했다고 한다(24p). 궁금한 사람을 위해 밝히자면, 나흘에 걸쳐 450 단어, 575 단어, 462 단어, 1250 단어를 쓴 기록이 있고, 1250 단어를 쓴 다음 날엔 여유롭게 낚시를 갔다고 한다.

글을 쓰는 헤밍웨이
헤밍웨이가 그날 쓴 글자 수를 적은 메모
대부분 손으로 글을 쓴 헤밍웨이(위)는 자신이 하루에 쓴 글자 수를 적어두었다고(아래). (출처: Medium, New York Times)



하지만 아무리 대문호라도 사람인데, 어떻게 항상 기계처럼 '규칙적으로' 글을 썼다는 걸까. 인터뷰어도 이점이 궁금했는지 '도저히 글이 안 써질 때'에는 어떻게 하는지를 묻는데, 헤밍웨이는 일단 (닥치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신명(juice)'이 나온다고 대답한다. 일필휘지로 찰나의 영감을 쏟아내는 천재 예술가보다는, 노동요를 부르며 목화솜을 따는 흑인 노예(...)에 더 가까운 이미지랄까.

 

<헤밍웨이의 말>, 31p

헤밍웨이
다시 읽어보면 어디서부터 계속해야 하는지 알게 돼요. 그 지점까지는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을 만큼 끌고 왔다는 게 보이니까. 신명은 어딘가에는 늘 있습니다.

플림프턴
하지만 전혀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습니까?

헤밍웨이
물론이죠. 하지만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끝냈을 때는 계속 쓸 수 있습니다. 시작만 할 수 있으면 괜찮아요. 신명(juice)은 나옵니다.




글쓰기를 대하는 헤밍웨이의 이런 성실한 태도를 알았기 때문인지, 헤밍웨이를 발굴한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는 (적어도 헤밍웨이에 따르면) 그에게 단 한 번도 글을 고치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41p).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출간한 에피소드를 들어보면, 사실 그가 헤밍웨이를 절대적으로 신뢰해서 그랬다기보다는, 헤밍웨이가 도무지 원고를 붙잡고는 놔주질 않았기에 그랬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퍼킨스였다면 '형... 일단 찍어서 팔아보자... 개정판이라는 것도 있잖아?!'라고 사정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초고를 계속 수정하지 않기 위해 출판을 한다"라는 멕시코 작가의 말을 인용하며, 책에서 벗어나고 잊기 위해 출판을 하는 거라고 말하는 보르헤스와 참으로 대조적인 모습의 헤밍웨이다. (보르헤스의 말에도 흥미가 생긴다면 아래 링크를 참조)

 

<헤밍웨이의 말>, 87p

그는 스크리브너사에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첫 교정쇄를 보냈던 때를 회상했다. "생각나요. 호텔 방에서 한 번도 나가지 않고 90시간 동안 그 책 교정쇄를 읽었죠. 다 보고 나자 글자가 너무 작아서 아무도 책을 안 살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눈이 빠질 것 같았어요. 원고를 몇 번이나 수정했지만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죠. 맥스 퍼킨스에게 활자 문제를 이야기하자, 내가 정말로 너무 작다고 생각한다면 책을 다 새로 찍겠다고 하더군요. 그건 정말 돈이 많이 드는 일이잖아요. 좋은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맥스가 옳았어요. 활자는 괜찮았어요."

 

<보르헤스의 말>, 198p

위대한 멕시코 작가인 알폰소 레예스는 "우리는 초고를 계속 수정하지 않기 위해 출판을 한다"라고 내게 말하더군요. 그의 말이 옳아요. 우린 책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걸 잊기 위해 출판하는 거랍니다. 일단 책이 나오면, 우린 그 책에 대한 모든 흥미를 잃어버리지요.

 

보르헤스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 #1 - 동네 할아버지 보르헤스

마음산책은 인터뷰 총서인 '말' 시리즈를 출간해왔는데, 칼 세이건, 헤밍웨이, 코난 도일, 한나 아렌트와 같이 각계 저명인사들의 인터뷰집을 번역해 총서 형태로 묶은 것이다. ​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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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웰 퍼킨스
헤밍웨이와 맥스웰 퍼킨스
헤밍웨이를 발굴하고 그와 평생 절친한 사이로 지냈던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 스콧 피츠제럴드 또한 그가 발굴한 작가였는데, 덕분에 '위대한 편집자'로 알려져 <지니어스>라는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출처: ECTOPOLIS, Library Hub)

 

지니어스

Daum영화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세요!

movie.daum.net

 



헤밍웨이의 엽총 자살

이토록 성실한 태도로 아주 오랜 시간 글을 쓰던 헤밍웨이는 1961년 6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는데,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듯, 엽총으로 자살한다. 그가 작가로서의 삶을 '지루하고 가차 없고 무자비한 싸움'이라고 했기 때문인지, 세간에는 그가 우울증에 빠져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평이 많다. 하지만 그가 아버지의 자살에 대해 한 말이나 그의 생애 마지막에 있었던 일들을 조금만 살펴보면, 그보다는 조금 더 복잡한 사정이 있었던 것 같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포스트에서 풀어보도록 하겠다.

 

<헤밍웨이의 말>, 95p

"있잖습니까," 그가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총으로 자살했어요." 침묵이 흘렀다. 헤밍웨이가 아버지의 자살에 대해 절대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물었다. 헤밍웨이는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건 모든 사람의 권리지만, 거기에는 약간의 이기주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약간의 경시가 담겨 있어요."

 

#4 헤밍웨이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을까?

 

헤밍웨이 인터뷰집, <헤밍웨이의 말> #4 - 헤밍웨이의 자살에 대해

헤밍웨이의 진솔하고 수줍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인터뷰집, <헤밍웨이의 말>을 읽어보고 있다. 몇몇 유명 단편에서 만날 수 있는 유난히 생략 많고 불친절한 문체 때문에 여러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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