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산책은 인터뷰 총서인 '말' 시리즈를 출간해왔는데, 칼 세이건, 헤밍웨이, 코난 도일, 한나 아렌트와 같이 각계 저명인사들의 인터뷰집을 번역해 총서 형태로 묶은 것이다.
마음산책 대표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말' 시리즈의 기획 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독자는 작가와 직접 부딪쳐서 그의 ‘말’을 듣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작가의 구체적인 생각이나 '말'이 베일에 싸여 있어 신비로운 궁금증을 자아내는, 그래서 정말로 '부딪쳐 보고 싶은' 작가를 먼저 찾아야 할 것인데, 마음산책은 참으로 탁월한 선택을 하였다.
바로 <보르헤스의 말>을 출간한 것. <보르헤스의 말>은 New Directions 출판사에서 낸 <Borges at Eighty: Conversations>를 번역한 것이다.
마음산책의 또 다른 탁월한 선택, <헤밍웨이의 말>도 조만간 다뤄보겠다. 글에서는 워낙 숨기는 게 많아, 말이 참 궁금한 아저씨였다. 부제도 '은둔 시절의 마지막 인터뷰'이다. 참고로 <헤밍웨이의 말>은 Melville House 출판사에서 낸 <Ernest Hemingway: The Last Interview: And Other Conversations>의 역서이다.
미로 같이 신비한 작가, 보르헤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는 참으로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작가이다.
나보코프, 데리다, 푸코, 해럴드 블룸 같은 이들이 극찬한 대문호이자, 뭔지 모르겠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각자로 불릴 정도로 사상사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도 하고, 시력을 잃은 뒤에도 글쓰기를 계속했다든가, 백과사전적인 지식으로 문학계 밖의 지성들과도 활발하게 교류했다든가 하는 가히 '전설적'이라 할만한 특징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글이 미로와도 같이 난해하고 신비롭기 때문이다.
보르헤스의 대표적인 단편집으로 <픽션들>과 <알레프>가 있는데, 여기에 수록된 대표 단편들 몇 개만 살펴봐도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쓴 글일까...?'하는 궁금증이 저절로 든다.
<알레프>, 아베로에스의 탐색
<알레프>, 아스테리온의 집
<알레프>, 독일 레퀴엠
<픽션들>, 바벨의 도서관
<픽션들>, 기억의 천재 푸네스
동네 이야기꾼 할아버지, 보르헤스
그래서 그의 말 또한 난해하고 현학적일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막상 그의 인터뷰집 속 말들을 살펴보면 영락없는 동네 이야기꾼 할아버지의 말투라는 걸 알게 된다. 미디어에 노출된 외양을 봐도 유약하고 인심 좋은 동네 할아버지 같이 생겼다.
보르헤스의 비서이자 두 번째 아내인 마리아 코다마는 보르헤스보다 무려 37살이나 어렸는데, 보르헤스가 죽기 두 달 전 그와 결혼한다. 혹시나 이에 얽힌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다음 포스트 참조.
보르헤스와 직접 인터뷰를 하며 인터뷰집을 편집하기도 한 윌리스 반스톤은 보르헤스의 목소리를 '바리톤'이라 하는데, 중후하고 근엄하며 젠체하는 목소리라기보다는 '진지함과 장난기를 오고 가며 거칠 것 없이 달관한 속내를 털어 놓는' 동네 이야기꾼 할아버지의 목소리랄까.
1917년에 William Buckley와 진행했던 아래의 인터뷰 영상이 좋은 예시인데, 보르헤스가 '나는 내 작품이 싫다.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논지의 말을 하자, 인터뷰어는 '그럼 노벨상을 공식적으로 거절하시는 건가요?'라 묻고, 보르헤스는 '혹시라도 노벨상을 준다면 관대한 실수라 여기고 게걸스레 받겠다'고 응수한다.
이쯤 되면, 생소한 환상적 사실주의 기교와, 백과사전적 인유(allusion)가 가득한 그의 '글'을 읽기 전에, 동네 할아버지처럼 썰을 푸는 듯한 그의 '말'에 먼저 한번 직접 부딪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보르헤스에게 OO이란?
보르헤스의 말에 부딪쳐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마도 직접 질문하는 것이겠다. 서어서문학, 혹은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우리가 모르는) 다양한 언어와 문학 작품들의 아름다움에 대해 질문을 하겠지만, 나를 포함한 일반 독자들이 보르헤스의 글에서 느끼는 호기심과 궁금증들은 사실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그건 보르헤스가 글에 담아내고 싶어했던 문제 의식과 상징, 그리고 (변덕스럽고 임시적인) 해답들이 어느 정도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르헤스, 당신에게 OO이란?'하고 직접 질문한다고 생각하며 그의 인터뷰들을 다시 읽다보면, 우리 동네 할아버지 보르헤스의 장황해보이는 썰들이 황현산 평론가의 말처럼 '논리성과 구체성'을 확보하는 걸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래 질문들이 부디 재미있는 질문들이길, 그래서 보르헤스 덕후를 양산하는 데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빌어본다.
1. 보르헤스에게 '불멸'이란? - 보르헤스의 말 #2
2. 보르헤스에게 '미로'란? - 보르헤스의 말 #2
3. 보르헤스에게 '망각'이란? - 보르헤스의 말 #3
4. 보르헤스에게 '사실'과 '허구'란? - 보르헤스의 말 #4
5. 보르헤스에게 '문학'이란? - 보르헤스의 말 #5
#2 보르헤스에게 '불멸'이란?
#3 보르헤스에게 '망각'이란?
#4 보르헤스에게 '사실'과 '허구'란?
#5 보르헤스에게 '문학'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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