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보르헤스

보르헤스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 #3 - 보르헤스에게 '망각'이란?

mayiread 2022. 4. 4. 23:20

 

 

 

보르헤스의 진솔한 목소리를 직접 들어볼 수 있는 그의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을 읽고 있다. 난해한 단편들의 저자답지 않게, 유머러스하고 장난끼 가득한 말투로 썰을 푸는 동네 할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 모습들이 궁금하다면 아래 포스팅을 참조. 


보르헤스의 말 #1 - 동네 할아버지 목소리의 보르헤스

 

보르헤스 인터뷰집,『보르헤스의 말』#1 - 동네 할아버지 보르헤스

마음산책은 인터뷰 총서인 '말' 시리즈를 출간해왔는데, 칼 세이건, 헤밍웨이, 코난 도일, 한나 아렌트와 같이 각계 저명인사들의 인터뷰집을 번역해 총서 형태로 묶은 것이다. ​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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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와 37살 연하의 아내, 마리아 코다마

 

보르헤스의 두 번의 결혼 - 엘사, 그리고 마리아 코다마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알레프>, <픽션들>로 대표되는 단편집으로 잘 알려져 있는 대문호이기도 하고, '거짓 사실주의'라 불리는 독특한 작품 세계로 데리다나 푸코 등의 사상가들에게도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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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개인사보다 그의 작품과 말 속에서 드러나는 주요 주제, 상징, 문학관이 더 궁금하다면 '보르헤스에게 OO이란?'이라는 주제로 연재하고 있는 아래 포스트들을 참조. 


1. 보르헤스에게 '불멸'이란? - 보르헤스의 말 #2 (이전 포스트)

2. 보르헤스에게 '미로'란?  - 보르헤스의 말 #2 (이전 포스트)

3. 보르헤스에게 '망각'이란? - 보르헤스의 말 #3 (이번 포스트)

4. 보르헤스에게 '사실'과 '허구'란? - 보르헤스의 말 #4 (다음 포스트)

5. 보르헤스에게 '문학'이란? - 보르헤스의 말 #5

 

 

보르헤스의 말 #2 - 보르헤스에게 '불멸'이란?

 

보르헤스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 #2 - 보르헤스에게 '불멸'이란?

마음산책이 번역-출간한 보르헤스의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을 읽어보고 있다. 난해하고 미로 같은 글 뒤에 숨겨진, 동네 이야기꾼 할아버지 같은 보르헤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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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말 #4 - 보르헤스에게 '사실'과 '허구'란?

 

보르헤스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 #4 - 보르헤스에게 '사실'과 '허구'란?

보르헤스의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을 읽어보며 아래 질문들을 던져보고 있다. 보르헤스의 작품을 읽었다면 누구나 궁금해할 법한 주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인터뷰 속 보르헤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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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말 #5 - 보르헤스에게 '문학'이란?

 

보르헤스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 #5 - 보르헤스에게 '문학'이란?

보르헤스의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과 그의 대표 단편 작품들에서 아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 있다. 보르헤스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면 누구나 물어봤을 법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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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포스트에서는 영원히 반복되는 불멸의 삶을 '끔찍한 것'이라 부르며, 혼란스러운 삶의 상징인 '미로의 악몽'에 대해 이야기하는 보르헤스에 대해 살펴보았다. 보르헤스라면 이 미로의 악몽에서 탈출하는 (죽음 이외의) 방법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 이번 포스트에서는 보르헤스가 '망각'에 대해 말하고 쓴 생각들을 살펴보며, 이에 답해보려 한다.

 


보르헤스에게 '망각'이란?

보르헤스에게 '죽음'은 단순히 '피곤한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불행과 부끄러움의 순간들이) '잊히는 것', '지워지는 것'을 의미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그는 '기억'이 없다면 행복할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르헤스의 말>, 44p

기분이 안 좋을 때면 ... 나는 몇 년 뒤에, 어쩌면 며칠 뒤에 죽을 것이고, 그러면 이 모든 게 문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진실로 위안을 얻는답니다. 나는 깨끗이 지워지길 고대하고 있어요... 나는 정말 나 자신에게 넌더리가 나기 때문이지요. 물론 내가 계속 이어져도 보르헤스였다는 개인적인 기억이 없다면, 그 경우에는 문제가 되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나는 태어나기 이전에도 온갖 종류의 이상한 사람이었을 테지만, 그걸 다 잊어버리면 그 사실이 나를 괴롭히지 못하니까요.



그래서인지 보르헤스는 <픽션들>에 수록된 그의 대표작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서, 모든 것을 기억하는 가상의 인물 '푸네스'를 (셜록과도 같은) 천재가 아니라, '망각'의 축복을 받지 못해 온갖 잡다한 기억에 사로잡혀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인물로 그린다.

 

<픽션들>, 146p

그에게는 일반적인 사고...를 할 능력이 실질적으로 거의 없었다... 그는 '개'라는 속(屬)적 상징이 형태와 크기가 상이한 서로 다른 개체들을 포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으며, 또한 3시 14분에 측면에서 보았던 개가 3시 15분에 정면에서 보았던 개와 동일한 이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곤 했다.

 

<픽션들>, 147-148p

나는 그가 사고하는 데는 그리 훌륭한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해 본다. 사고라는 것은 차이점을 잊는 것이다. 그것은 일반화하고 추상화하는 것이다. 푸네스의 비옥한 세계에는 상세한 것들, 즉 곧바로 느낄 수 있는 세세한 것만 존재했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 단편 표지. 기억의 감옥을 묘사하는 듯하다. (출처: Medium)

 

잠들지 못하는 푸네스를 그린 일러스트. 보르헤스는 이 작품을 '불면증'의 은유로 썼다 한다. (출처: Fiza Jha)



보르헤스는 이처럼 '망각'이 정상적인 사고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망각이 '상상력'이라 부를 수 있는 어떤 창조적인 힘 또한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 보았다.

 

<보르헤스의 말>, 52p

사람들은 기억도 해야 하고 잊기도 해야 해요. 모든 걸 다 기억해서는 안 돼요... 내 작품에 나오는 푸네스라는 인물처럼 모든 것을 끝없이 기억하면 미쳐버릴 것이기 때문이에요. 물론 우리가 모든 걸 잊는다면, 우린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거예요. 우린 우리의 과거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누구인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할 거예요. 우린 그 두 가지 요소가 뒤섞인 상태를 지향해야 하는 거예요... 이 기억과 망각을 우린 상상력이라 부르지요.

 


그렇다면 이 망각과 기억이 뒤섞인 '상상력'이라는 상태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가 궁금증으로 남는다. 다행히 보르헤스는 <알레프>의 첫 단편, '죽지 않는 사람'을 여는 제사(inscription)에 꽤나 결정적인 힌트를 남겨 놓았다.

 

<알레프>, 7p

솔로몬은 "땅 위에 새로운 것은 없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플라톤이 상상했던 것처럼 "모든 지식은 단지 회상에 불과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솔로몬은 "모든 새로운 것은 망각일 뿐이다."라는 금언을 남긴다.

― 프랜시스 베이컨 『에세이』 58

 


모든 것이 반복되는 끔찍하도록 지루한 지식의 역사에서, 새로운 것은 오직 '망각된 것'일뿐이라는 말인데, 보르헤스는 인터뷰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상술한다.

 

<보르헤스의 말>, 268p

나는 개인적으로 모든 작가는 같은 책을 되풀이하여 쓰고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세대는 다른 세대들이 이미 썼던 것을 아주 약간 변형하여 다시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답니다. 누구든 혼자 힘으로 많은 걸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사람은 언어를 사용해야 하고, 그 언어는 전통이기 때문이에요... 전통은 그 이전의 모든 전통을 당연시한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해요. 

 


결국 보르헤스에게 '망각'이란, 새로울 것 없이 반복되기에 무의미할 수밖에 없는 지식사와 문학사를 (아주 약간 변형된) 새로운 상상력으로 채울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인 것. 겸손하다 못해 소박하기까지 한 그의 이런 문학적 비전은 '죽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호메로스의 망각과 창작의 기원

<알레프>의 첫 단편, '죽지 않는 사람'은 '죽지 않는 자들의 도시'에서 '호메로스'를 만나 영생의 물을 마시고 수백년을 살아온 화자의 기록인데, 영원히 반복되는 삶이 주는 무의미함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알레프>, 25p

'죽지 않는 사람들'의 공화국은 여러 세기에 걸친 연습을 통해 배운 끝에 완벽한 인내와 거의 완벽에 가까운 경멸에 이르렀다. 그들은 무한하게 긴 시간의 주기 속에서 모든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방법으로 바라보면, 우리의 모든 행동들은 지당한 것이지만 동시에 대수롭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도덕적이거나 지적인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무의미함을 견디다 못한 주인공은 결국 다시 필멸의 강물을 찾아 마시고 죽음을 맞이하며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데, 보르헤스의 단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알레프>, 27, 29p

죽음(또는 죽음에 대한 언급)은 인간을 사랑스럽고 애처롭게 만든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환영적인 조건, 즉 그들이 행하는 각각의 행동은 마지막 행동이 될 수 있고 꿈속의 얼굴처럼 희미해져서 지워지지 않을 얼굴은 하나도 없다는 것 때문에 동요한다...

나는 조용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행복해하면서 피가 천천히 방울지는 아름다운 과정을 지켜보았다. "나는 다시 죽는 존재가 되었어." 나는 여러 차례 반복했다. "나는 다시 모든 사람들과 같이 되었어." 그날 밤 나는 새벽녘까지 잠을 잤다.


단편의 끝에서 주인공은 수백년에 걸친 자신의 기록과 기억을 다시 되짚어본다. 그러던 중 그는 호메로스를 만나기 전의 기록들에서부터 호메로스의 말과 지식들이 사용되었음을 알아차리는데, 알고 보니 사실 자기 자신이 바로 호메로스였던 것. 이 기록이 <일리아드>의 마지막 권에서 발견되었다는 복선을 통해 이는 더 확실해진다. 주인공은 이를 까맣게 잊고 자기 정체를 착각한 채 살아왔던 것이다. 

보르헤스는 주인공이 이를 깨닫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알레프>, 32p

끝이 가까워지면 기억의 모습들은 남아 있지 않고, 단지 단어만 남는다. 시간이 한때 나를 묘사했던 말과 오랜 세월 동안 나와 함께했던 운명의 상징인 단어들이 혼동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그리 이상하지 않다. 나는 호메로스였다. ... 나는 ... '그 누구도 아닌 사람'이 될 것이다. 즉 나는 모든 사람이 될 것이고, 나는 죽을 것이다.

 


이 혼란스러운 이야기 뒤에 이런 후기를 덧붙인다.

 

<알레프>, 34p, 영역판 참조

카르타필루스[=화자]는 "끝이 가까워지면 기억의 모습들은 남아 있지 않고, 단지 단어만 남는다."라고 썼다. 말, 쫓겨 나와(taken out of place) 불구가 된(mutilated) 말, 즉 다른 사람들의 말은 바로 시간과 세기가 그에게 남겨 준 보잘것없는 동냥이었다.

 

 

자, 이제 이 혼란스러운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보르헤스는 문학 창작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의 마지막 장을 다시 상상해 쓴다. 그것은 '창작의 기원은 무엇이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려는 보르헤스의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보르헤스는 영원히 반복되는 지식사에서는 새로울 것도, 가치 있는 것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호메로스를 '죽지 않는 사람'으로 설정해 무의미한 영생과 황홀한 죽음의 구원을 모두 경험하게 한 건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호메로스가 창작의 기원을 경험한 시인이었다면 분명 이 영원한 반복과 진부함의 문제를 극복하고 어떻게든 <일리아드>의 창작을 이뤄냈으리라. 도대체 어떻게?

 

여기서 보르헤스가 꺼내든 카드가 바로 망각이다. 호메로스는 자신의 정체를 까맣게 잊는다. 하지만 '기억의 모습들'이 사라진 후에도 남아 있는 게 있다. 바로 말(words), 그것도 다른 사람들의 말이다. 그 말들은 원래의 맥락과 의미를 무시하고(taken out of place) 앞뒤를 잘라낸 채(mutilated) 가져다 쓴 '남의 말'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은 아주 오랫동안 호메로스를 사로잡을 만큼 강렬한 서사시였다. 호메로스가 그 말을 모두 자신의 이야기라고 믿고 살아왔으니 말이다. 호메로스는 자신의 존재를 잊음으로써, 그리고 무수히 많은 '남의 말'을 자신의 말처럼 갖다 씀으로써 <일리아드>를 써낸 것이다.

 

'죽지 않은 사람'의 화자 카르타필루스(Cartaphilus)는 영생하며 방랑하는 전설 속 유대인의 이름이다. (출처: WikiWand)

 

이처럼 보르헤스에게 망각은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탄생시킨 창작의 기원이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미로와도 같은 혼란스러운 삶 속에서 무언가가 새로울 수 있다면, 그것은 '잊혀진 남의 말'이라는 것이다. 미로 속을 헤메이듯 불멸의 삶을 방랑하며 살아야 하는 '카르타필루스'를 화자로 내세운 보르헤스가 결국 화자에게 선물한 건 단순히 죽음뿐이 아니었다. 보르헤스가 '시간과 세기가 남겨준 보잘것없는 동냥'이라 표현한 '남의 말'도 있었다. 이 보잘것없는 동냥도 '망각'만 있다면, '에이... 이건 이미 봤던 거잖아?'라는 진부함 없이 끊임없이 빠져들 수 있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보르헤스가 천국이 있다면 도서관의 모습을 했으리라 상상한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미로의 악몽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자신을 잊고 남의 말에 빠져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한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보르헤스에게 문학과 창작이 '잊혀진 남의 말'을 다시 쓰는 일에 불과했다면, 그의 문학 작품들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어야 하지 않나? 도서관 구석 어딘가에 처박힌 먼지 쌓인 고서나 좀 뒤져서 인용하면 되는 일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보르헤스의 단편들은 그 정반대이다. 정말로 생경하다.

 

보르헤스는 사실 굉장히 많은 작품에서, 있지도 않은 '남의 말'을 마치 있는 것처럼 취급하며 '가짜 문헌', '가짜 주석'을 만들어낸다. 왜 이런 짓(?)을 한 걸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 질문을 할 때가 되었다. 보르헤스에게 '사실'과 '허구'란 도대체 무엇이었길래, 그는 있지도 않은 '남의 말'을 지어내 인용하고 주석을 다는 짓을 한 걸까? 이에 대해선 아래 문답을 중심으로 다음 포스트에서 다뤄보겠다.

 

마음산책, <보르헤스의 말>, 219~221p

리드
내 질문은 언젠가 당신이 했던 정말로 중요한 발언으로 시작해요.

"나는 허구(fiction)를 쓰지 않는다. 사실(fact)을 창조한다."
...
보르헤스
내가 그 말을 했다면 잘한 거네요.

...
리드
그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허구를 쓰지 않는다. 사실을 창조한다

보르헤스
사실과 허구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그 어떤 것도 확실히 알 수 없어요... 우리는 매우 불가사의한 우주에서 살고 있어요. 모든 게 수수께끼지요.

 

보르헤스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 #4 - 보르헤스에게 '사실'과 '허구'란?

보르헤스의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을 읽어보며 아래 질문들을 던져보고 있다. 보르헤스의 작품을 읽었다면 누구나 궁금해할 법한 주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인터뷰 속 보르헤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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