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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 #4 - 보르헤스에게 '사실'과 '허구'란?

mayiread 2022. 4. 19. 11:12

 

 

 

 

보르헤스의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을 읽어보며 아래 질문들을 던져보고 있다. 보르헤스의 작품을 읽었다면 누구나 궁금해할 법한 주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인터뷰 속 보르헤스의 말과 잘 알려진 그의 대표 단편들에서 찾아보는 것이 목표이다.


1. 보르헤스에게 '불멸'이란? - 보르헤스의 말 #2

2. 보르헤스에게 '미로'란?  - 보르헤스의 말 #2

3. 보르헤스에게 '망각'이란? - 보르헤스의 말 #3 (이전 포스트)

4. 보르헤스에게 '사실'과 '허구'란? - 보르헤스의 말 #4 (이번 포스트)

5. 보르헤스에게 '문학'이란? - 보르헤스의 말 #5 (다음 포스트)

 

 

보르헤스의 말 #2 - 보르헤스에게 '불멸'이란?

 

보르헤스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 #2 - 보르헤스에게 '불멸'이란?

마음산책이 번역-출간한 보르헤스의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을 읽어보고 있다. 난해하고 미로 같은 글 뒤에 숨겨진, 동네 이야기꾼 할아버지 같은 보르헤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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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말 #3 - 보르헤스에게 '망각'이란?

 

보르헤스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 #3 - 보르헤스에게 '망각'이란?

보르헤스의 진솔한 목소리를 직접 들어볼 수 있는 그의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을 읽고 있다. 난해한 단편들의 저자답지 않게, 유머러스하고 장난끼 가득한 말투로 썰을 푸는 동네 할아버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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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말 #5 - 보르헤스에게 '문학'이란?

 

보르헤스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 #5 - 보르헤스에게 '문학'이란?

보르헤스의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과 그의 대표 단편 작품들에서 아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 있다. 보르헤스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면 누구나 물어봤을 법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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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트들에서는, 삶이란 혼란스러운 '미로'와도 같은 것이고, '불멸'이란 영원히 그 미로 속을 헤매야 하는 일이기에 정말 끔찍한 것이라 말하는 보르헤스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그가 여러 단편에서 미로의 상징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불멸의 등장인물들로 하여금 절망적인 권태를 느끼고 죽음을 갈망하도록 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이해해볼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이러한 '미로의 악몽'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망각'을 지목했다는 것. 그는 '유일한 새로운 것은 망각'이며, '상상력이란 기억과 망각이 뒤섞인 상태'라 믿으며, <죽지 않는 사람>의 주인공 호메로스와 같이 자신을 잊고 남의 말에 빠져드는 것이 문학적 창작의 유일한 가능성이라 말한다. (호메로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위 #3 포스트를 참조)

 

<보르헤스의 말>, 52p

사람들은 기억도 해야 하고 잊기도 해야 해요. 모든 걸 다 기억해서는 안 돼요... 내 작품에 나오는 푸네스라는 인물처럼 모든 것을 끝없이 기억하면 미쳐버릴 것이기 때문이에요. 물론 우리가 모든 걸 잊는다면, 우린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거예요. 우린 우리의 과거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누구인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할 거예요. 우린 그 두 가지 요소가 뒤섞인 상태를 지향해야 하는 거예요... 이 기억과 망각을 우린 상상력이라 부르지요.

 

<보르헤스의 말>, 268p

나는 개인적으로 모든 작가는 같은 책을 되풀이하여 쓰고 있다고 생각해요. 또 모든 세대는 다른 세대들이 이미 썼던 것을 아주 약간 변형하여 다시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답니다. 누구든 혼자 힘으로 많은 걸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사람은 언어를 사용해야 하고, 그 언어는 전통이기 때문이에요... 전통은 그 이전의 모든 전통을 당연시한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해요. 

 

 

 

보르헤스에게 '사실'과 '허구'란?

그렇다면 보르헤스의 문학은 모두 '남의 말'을 짜깁기한 작품에 불과할까?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다. 보르헤스가 '남의 말'이라고 인용하는 텍스트들은 대부분 (역사적 배경은 꽤 그럴듯하지만) 순전히 상상에 불과한, 허구적인 텍스트들이다. 있지도 않은 텍스트를 실존하는 척하며 인용해놓고는 그것을 분석하는 글을 쓰거나 주석을 다는 것이다.

 

<픽션들>, 10p

방대한 분량의 책들을 쓰는 행위, 그러니까 단 몇 분 만에 완벽하게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생각을 장장 오백여 페이지에 걸쳐 길게 늘리는 짓은 고되면서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정신 나간 짓이다. 이미 이러한 책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그것들에 관한 요약, 즉 논평을 제공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 더 분별력이 있고, 더 요령 없고, 더 게으른 나는 가상의 책 위에 주석을 쓰는 편을 택했다.

 

 

그렇다면 보르헤스는 도대체 왜 이러한 일(혹은 짓)을 한 것일까? 이미 있는 남의 말을 찾아서 가져다 쓰는 일이, 가상의 텍스트를 직접 써 남의 말인 척하고 그 위에 주석까지 다는 일보다는 훨씬 더 쉬웠을 텐데 말이다. 미로의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자신을 잊고 '남의 말'에 빠져들어야 한다고 해놓고는, 왜 허구의 책에 허구의 주석까지 다는 더 미로 같은 일을 해댄 걸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사실적 기록' 혹은 '객관적 사실'에 대한 보르헤스의 생각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사실 보르헤스는 증명해낼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이나 '사실적 기록'이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창작 활동이 '허구를 쓰는 것'이 아닌, '사실을 창조하는 것'이라 말한 것은 그런 배경이다. (아래 링크된 포스트에서 이에 대해 조금 더 명료하게 설명해보려 했다.)

 

마음산책, <보르헤스의 말>, 219~221p

리드
내 질문은 언젠가 당신이 했던 정말로 중요한 발언으로 시작해요.

"나는 허구(fiction)를 쓰지 않는다. 사실(fact)을 창조한다."
...
보르헤스
내가 그 말을 했다면 잘한 거네요.

...
리드
그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허구를 쓰지 않는다. 사실을 창조한다

보르헤스
사실과 허구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그 어떤 것도 확실히 알 수 없어요... 우리는 매우 불가사의한 우주에서 살고 있어요. 모든 게 수수께끼지요.

 

보르헤스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보르헤스 <알레프>, 보르헤스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보르헤스, 어떻게 읽어야 할까? 보르헤스의 글은 꽤, 때로는 너무, 난해하다. 도서관 사서로 있으며 눈이 멀 정도로 책을 읽어댄 그가 온갖 인유(allusion)로 글을 도배하기 때문도 있지만, 무엇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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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길로 더 새기 전에 빨리 정리해보자. 보르헤스는 '진짜로 있었다'라고 확신할 만한 기록도, 사실도 없다고 믿는다. 어차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없다면, 불완전한 기억과 추측을 기록하고 사실이라 믿는 일과 허구의 이야기를 지어낸 뒤에 진짜라고 믿는 일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믿음은 생각의 출처와 독창성을 밝히는 일에도 그대로 적용해볼 수 있다. 보르헤스의 말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자면, 우리에게는 '진짜' 출처를 밝히는 일도, '진짜' 독창성을 증명하는 일도 가능하지 않다. 그 생각의 독창성을 강조하는 기록이든, 그 생각을 이미 누군가는 했다고 출처를 밝히는 기록이든, 우리는 그 무엇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는, 무한과도 같이 반복되어 온 지식사에는 온갖 말과 생각이 쌓여 있으니, 언제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무슨 생각이라도 했을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보르헤스에게는 '가상의 책'을 써내는 일이든, '진짜 출처'를 밝히며 인용을 하는 일이든, 어차피 누군가 언제 어딘가에서는 이미 했을 말과 생각을 반복하는 일임에는 매한가지였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반복되는 '남의 말과 생각'이 바로 전통으로서의 '언어'라고 하며, 사람은 누구나 이 '언어'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보르헤스의 말>, 268p

나는 개인적으로 모든 작가는 같은 책을 되풀이하여 쓰고 있다고 생각해요. 또 모든 세대는 다른 세대들이 이미 썼던 것을 아주 약간 변형하여 다시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답니다. 누구든 혼자 힘으로 많은 걸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사람은 언어를 사용해야 하고, 그 언어는 전통이기 때문이에요... 전통은 그 이전의 모든 전통을 당연시한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해요. 

 

결국 보르헤스가 빠져들어야 한다고 했던 '남의 말'이란, 단순히 잊혀진 고서적에 적힌 글귀가 아니라, 우리에게 전통으로 주어지는 '언어'였던 것이다. 우리의 모든 창작과 사고가 언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면, 그래서 우리 각자가 하는 모든 말과 생각이 이 언어 전통의 유한한 한계와 가능성에 갇혀 있는 것이라면, 사실 무언가 의미 있고 아름다운 창작을 해내는 데 필요한 건 '정확한 출처'를 밝히는 일도, '새로운 독창성'을 실험하는 일도 아닐지 모른다.

 

오히려, 내가 어딘가에서 영향을 받아 독창성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깨끗이 잊고, 분명 어디선가 봤을 법한 그 이야기에 빠져들어 어느새 그 이야기를 바꿔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 사실과 허구, 기록과 해석, 원조와 아류, 나의 말과 남의 말을 구분하려드는 집착을 내려놓고, 불완전하지만 매혹적인 언어의 가능성에 빠져드는 일. 보르헤스가 창작의 기원으로 제시했던 <죽지 않는 사람>의 주인공 호메로스가 했던 일.  그런 일들이 '미로의 악몽'을 빠져나오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일지도 모른다. 

 

 

'틀뢴'의 상상이 점령한 지구

보르헤스의 사실과 허구에 대한 생각을 그의 또 다른 대표 단편,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의 대표 단편선 <픽션들>의 수록작인 이 단편은 보르헤스가 친구와의 대화 중 '우크바르'라는 생소한 국가의 지명을 듣게 되고, 그 출처를 찾던 중 우연히 '우크바르'가 위치한 '틀뢴'이라는 행성의 모든 것을 다룬 백과사전 일부를 발견해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백과사전엔 '틀뢴' 행성의 새로운 언어와 철학, 외계적인 물체와 물질들에 대한 묘사와 서술이 너무나도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었는데, 실제로 세계 각국에서 틀뢴 행성의 것으로 보이는 신비한 물건들이 발견되기도 하고, 틀뢴 백과사전의 나머지 권들이 나타나기도 하면서, 틀뢴이라는 행성이 실존한다는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 신비한 물건들이란 틀뢴의 알파벳이 새겨진 나침반, 크기가 아주 작지만 놀랍도록 무거운 원추형 금속 따위이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단편의 표지 (출처: goodreads)

 

이 단편에 영감을 받아 실제로 제작된 <틀뢴 백과사전>의 모습 (출처: 프로젝트 사이트 프린스턴 대학 전시회 포스트)

 


흥미로운 것은 틀뢴 백과사전을 비롯한 이 모든 것들이 사실 비밀 결사 단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가 만들어낸 완전한 허구였다는 것. 그들은 가공의 국가와 행성을 상상해낸 뒤, 이에 대한 백과사전을 발간해 사람들로 하여금 이 가공의 공간이 사실이라고 믿도록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작은 집단의 상상에 불과한 이 허구의 세계는 진짜 역사 기록으로 받아들여지게 되고, 객관적 사실과 뒤섞여 현실 세계를 뒤바꾸게 된다.

 

<픽션들>, 38-39p

틀뢴은 하나의 미로일 테지만,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미로, 인간에 의해 해독되도록 운명 지어진 미로이다. 틀뢴의 성질과 틀뢴과의 접촉은 이 세상을 붕괴시켰다. 틀뢴의 엄밀함에 현혹된 인류는 그것이 천사들의 엄밀함이 아니라 체스 대가들의 엄밀함이라는 것을 잊고, 또다시 잊어버리는 중이다. 이미 학교에는 틀뢴의 '원시적 언어'(추측적인)가 침투했다. 이미 틀뢴의 조화로운 역사(감동적인 일화들로 가득한)를 가르치는 수업은 내가 어릴 적에 지배했던 역사를 지워 버렸다. 이미 허구적 과거는 인간의 기억에서 또 다른 과거, 즉 우리가 아무것도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심지어 거짓인지도  알 수 없는 과거를 점령하고 있다. ... 은둔자들이 만든 도처에 산재한 왕조가 세상의 모습을 바꾸어 버렸다. 그리고 그들의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새로운 허구적 세계에 대한 상상이 실제 세계와 역사를 완전히 바꾸어버렸다는 이야기인 것.​ 상상과 허구에 불과한 백과사전이 세상을 바꾸다니 정말 엄청난 창작의 힘이로군!... 하고 흥분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지점이 있다. 이 '새로워 보이는' 상상과 허구에 대해 보르헤스가 남기고 있는 코멘트를 보자.

 

보르헤스의 코멘트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틀뢴'에 대한 상상력이 인간에 의해, 그리고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상상력이라는 것. 오르비스 테르티우스라는 집단의 상상력은 비록 아무리 새롭고 경이로워 보일지라도, 언어의 가능성을 벗어난 신비한 '천사들의' 외계적인 상상력이 아니다. 그건 어찌 되었든 애초부터 인간들이 읽고 이해하고 속을 수 있도록, 애초부터 인간의 언어로 쓰여져야만 했던 상상이다.

 

여기서 보르헤스는 두 번째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확실하게 알 수 없다면, 그래서 과거의 모든 기록들이 거짓인지도 알 수 없다면, 인간의 언어로 쓰여진 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의 허구적인 상상과 지금까지 우리에게 가르쳐져 온 '어릴 적에 지배했던 역사'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을까? 과거에 대한 우리의 '인간의 기억'이 너무나도 불완전해서, 우리가 믿고 있는 과거의 사실이 모두 허구일지도 모른다면, 허구의 상상이 허구의 기억을 대체하는 일에 도대체 새로울 것이 뭐가 있단 말인가? 

 

위 질문은 당연히 수사적인 것이니, 보르헤스에게 '틀뢴 백과사전' 이야기는 이중의 목표를 지닌 과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우리가 '사실'이라 믿는 것들이 사실은 만들어낸 '허구'와 그렇게 엄밀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그 '허구'가 아무리 새로워 보일지라도 결국엔 인간의 언어 전통에 의해 제약을 받는 '남의 말'이리라는 걸 보이는 것.

 

 

 

그래서, 미로에선 어떻게 벗어나는 거라고?

잠깐, 보르헤스는 분명 미로의 악몽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호메로스의) '망각'을 지목했다. 독창성에 대한, 혹은 사실성에 대한 집착을 잊어버리고 전통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남의 말', 언어의 가능성에 빠져들라고도 했다. 그런데 그 결과로 탄생한 그의 소설을 보라. '틀뢴 백과사전'에 대한, 또 다른 '미로 같은' 이야기이다. 보르헤스 자신도 찔렸는지 솔직히 고백한다. "틀뢴은 하나의 미로"라고.

 

미로의 악몽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더니, 결국 미로를 만드는 방법만 알려준 꼴이다. 하지만 보르헤스를 사기꾼이라 부르기엔 아직 이르다. 미로에서 벗어나는 쾌감을 맛볼 수 있는 작품을 쓰려면, 먼저 독자가 미로에 갇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보르헤스는 작가로서의 자신을 포함해 우리 모두가 미로에 갇혀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려 노력했을 뿐이다.

 

약속한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미로의 악몽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들려주는 보르헤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자, 아래 꿈 이야기가 그 증거다. 물론, 자세한 꿈해몽이 듣고 싶다면 복채를 내주셔야 한다. 글을 읽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을 복채로 삼겠다.

 

<보르헤스의 말>, 54p

나는 거의 매일 밤 악몽을 꿔요... 빈 방이 많았어요... 나는 이 방 저 방 돌아다녔지요. 방에는 문이 없는 것 같았어요. 나는 계속 마당으로 나가는 길을 찾고 있었죠. 한동안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 후에 난 소리를 질렀어요. 하지만 아무도 없었죠...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어요. 이건 미로의 꿈일 거야. 그러니까 난 어떤 문도 찾을 수 없을 거야. 이 많은 방 중에서 어느 한 방에 앉아 그저 기다리기만 해야 할 거야. 언젠가는 깨어나겠지.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어요. 내가 이건 미로의 악몽이라는 걸 깨닫고 속으로 중얼거렸을 때, 나는 미로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게 된 거예요. 그래서 그냥 바닥에 앉아 있기만 했지요.

 

보르헤스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 #5 - 보르헤스에게 '문학'이란?

보르헤스의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과 그의 대표 단편 작품들에서 아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 있다. 보르헤스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면 누구나 물어봤을 법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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