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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위저드 베이커리> 리뷰대회 수상작 - 성장의 마법, 성장의 문법 #1

mayiread 2022. 7. 16. 18:30

 

 

2022년 7월, 창비에서 <위저드 베이커리> 개정판 출간기념리뷰대회를 공모했습니다. 앞으로 연재할 리뷰는 본 공모에서 '체인 월넛 프레첼'이라는 엄청난 이름의 상을 수상한 것인데요. 상의 이름만큼이나 책 읽고 글 써서 가정경제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무익한 취미생활에 얼마 되지 않는 쓸모 있는 기록이라 남겨봅니다. 

 

<위저드 베이커리> 리뷰대회 수상작 발표🥨

『위저드 베이커리』 리뷰대회 수상자 발표 ■ 수상자 및 수상작 대상 1명 타임 리와인더 머랭쿠키 상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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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보내 준 상장. 비에 젖어 다소 구겨졌지만, 서른 넘어 받는 마지막 상이 될지도.

 

 

 

 

성장의 마법, 성장의 문법


1  50만 부짜리 베스트셀러를 왜 고쳤을까 (이번 포스트)

'청소년', '영어덜트' 문학에서 '문학'으로 (이번 포스트)

3 멈출 줄 모르는 '악몽의 인과율' (다음 포스트)

4 '단지 이 자리에' 있었을 뿐이니까 (다음 포스트)

5  '부서진' 선택에 대한 이야기

6  성장의 마법, 성장의 문법


2022년 3월, 창비에서 구병모 작가의 <위저드 베이커리> 개정판을 냈다. <위저드 베이커리>가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한 게 2008년이니, 무려 14년 만에 책이 개정된 것이다.

 

위저드 베이커리 - 교보문고

구병모 장편소설 | 한국 청소년문학의 ‘고전’으로 기억될 작품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세상에 나온 『위저드 베이커리』는 2009년 당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간 청소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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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전(왼쪽)과 후(오른쪽)의 <위저드 베이커리> (망원동 클럽 창비 공간에서 직접 촬영)

 

이미 입지가 굳건한 구병모라는 중견 작가가, 50만 부나 팔려나간 베스트셀러를, 그것도 무려 14년 만에 개정했다. 그녀가 직접 펜을 들어 자신의 데뷔작을 수고롭게 고쳐가면서까지 독자들에게 꼭 들려줘야 했던 이야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 개정 전후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어낸 과정을 적었다.

 

결론부터. 구병모 작가는 우리 모두가 외면해왔던 '성장의 비밀'을 고집스럽게 다시 들려준다. 성장은 사실 무언가를 얻는 과정이 아니라, 빼앗기는 과정이라고.

 

 

 

50만 부짜리 베스트셀러를 왜 고쳤을까

'클래식'의 반열에 든 책들이 신선한 리커버로 독자들에게 다시 소개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미 중견의 지위를 얻은 작가가 수고롭게 소설을 '개정'하는 건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그것도 14년 동안 꾸준히 알아서 50만 부나 잘 팔려 온 베스트셀러를. 왜? 굳이? 궁금증이 생길 만도 하다.

당연히 모든 직업 활동의 제1목 표는 먹고사는 것이다. 구병모 작가는 자신도 다르지 않다고 소탈하게 고백한다. 예술 또한 '생계유지'를 위한 '노동'이라고 했으니. 그러니 개정 작업에 특출 나게 고결한 이유가 있다고 포장할 생각은 없다.

 

구병모 "작가는 도돌이표 같은 고민 반복하는 존재"

`심장에 수놓은…` 출간 구병모 타투 주제로 여성 연대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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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새로운 시대 속에서 새로운 독자들을 맞이한 <위저드 베이커리>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중견 작가의 고민은, 그저 '장삿속'으로 치부해버리기엔 그 무게감이 남다르다. 개정판 작가의 말이 유난히 묵직하게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일지도.

 

<위저드 베이커리> 개정판, 253-254p

발표 당시에는 ... 청소년문학이라고 하면 좋은 것이나 결 고운 것을 엄선하여 보여 줌으로써 청소년을 올바른 길로 계도하는 거라는 인식이 있던 시절이었고, 날 선 날것은 은폐하여 세상에 마치 그런 일은 없는 것처럼 눈을 가리는 일이 청소년을 위한 길이라고 믿는 다수 어른들의 비난에 부딪쳤습니다. 또 한 발짝 정도 세상이 달라진 이제는, 소설에 나타나는 여러 혐오와 분노 유발 요소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새로운 젊은 세대의 반발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어떤 소설은 생물과 같아, 독자가 지향하는 바에 따라 변화합니다. 한편으로 어떤 소설은 화석과 같아, 고생대의 잔혹한 기후와 척박한 환경을 증명하기도 합니다. 하여 ... 화석과 생물의 중간노선을 타는 개정판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2009년과 2022년의 구병모 작가. 도통 늙지를 않으신다. (출처: 세계일보 & 아주경제)


자, 그럼. 구병모 작가가 다듬어낸 화석과 생물의 중간쯤 어딘가에 가닿는 이 '개정판'. 과연 어떤 모습인 걸까.


 

'청소년' , '영어덜트' 문학에서 '문학'으로

<위저드 베이커리>는 처음엔 청소년 문학으로 소개되었다.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었으니. 반면 개정판은 영어덜트 문학으로 소개되고 있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이제 창비의 영어덜트 브랜드인 소설-Y 시리즈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영어덜트 문학은 독특한 장르이다. 주로 <헝거게임> 같이 10대 중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성장소설임에도, 이 장르 독자의 55%가 19세 이상의 성인이고 28%가 30세 ~ 44세의 '찐 어른'이다. 자녀들 읽으라고 사는 것도 아니다. 이들의 구매 행위 중 78%가 '내가 읽으려고' 사는 것이다. 영어덜트 문학은 청소년과 어른들을 모두 흡인하고 있는 기이하고도 매력적인 장르의 문학인 것.

 

New Study: 55% of YA Books Bought by Adults

More than half the consumers of books classified for young adults aren’t all that young. According to a new study, fully 55% of buyers of works that publishers designate for kids aged 12 to 17 -- nicknamed YA books -- are 18 or older, with the largest se

www.publishersweekly.com

 

 

그럼 구병모 작가가 <위저드 베이커리>를 영어덜트 문학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개정판을 냈다는 말인가? 작가 본인의 대답은 단호한 '아니오'이다. 사실 구병모 작가는 아주 예전부터 본인의 소설이 '청소년'만을 위한 소설이 아님을 강조해왔다.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자 '구병모'를 만나다>, 세계일보, 2009년 3월

성인까지도 흡인하는 청소년소설이라고요?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독자를 한정하지도 배제하지도 않고 썼습니다.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자 '구병모'를 만나다

  ◇ '위저드 베이커리'를 쓴 구병모 작가“성인까지도 흡인하는 청소년소설이라고요?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독자를 한정하지도 배제하지도 않고 썼습니다. 선 위에 발 걸치고 서있는 듯 묘하고

www.segye.com


난 구병모 작가가 <위저드 베이커리>에 붙어 온 '청소년', '영어덜트'와 같은 수식어를 완전히 떼어내고, 그냥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 읽히길 바라는 마음에서 개정 작업을 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고등학생 '남자애' 정도로 그려졌던  주인공 '나'는 개정판에서 더 담담하고 절제된 한 명 몫의 보편적인 '인간'으로 그려지고 있다. 늦은 시간이라는 이유로 '야식 본능'을 떠올리며, 유행하는 말투를 내뱉는 '초딩시키'들의 댓글을 읽고, 스스로를 '머저리', '계산적'이라고 자책하던 주인공은 이제 '신중하게 행동의 폭을 결정할 뿐'인 사뭇 어른스러운 인간이 되었다.

 

<위저드 베이커리>, 개정전 8p & 개정판 8p

(개정 전) 야식 본능이 출몰하는 새벽 한두시에, 얇게 선 햄을 돌돌 말아 넣은 크루아상이나 담백하다 못해 밋밋한 허브 향 베이글 같은 걸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지만, ...

(개정 후) 얇게 선 햄을 돌돌 말아 넣은 크루아상이나 담백하다 못해 밋밋한 허브 향 베이글 같은 걸 새벽 한두시에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지만, ...

 

개정전 36-37p & 개정판 41p

(개정 전) 위에 생각 없는 초딩시키 보셈. 네가 그 상황이 되어는 봤냐? ... 겪어보지 못한 것들은 KIN.

(개정 후) 위에 생각 없는 놈 봐라. 네가 그 상황이 되어는 봤냐? ... 책임져 줄 거냐?

 

개정전 38p & 개정판 43p

(개정 전) ...앞일을 고려해가며 행동의 폭을 결정하는 나는 머저리라기보다는 오히려 계산적이다.

(개정 후) ...앞일을 고려해가며 신중하게 행동의 폭을 결정할 뿐이다.



'치사하고 더러워서' 자존심을 앞세우며 아버지의 도움조차 받을 생각 않던 '나'가 그저 가출 미수 청소년의 모습에 불과했다면, '치사하고 더러워도' 아버지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겨우 고시원에라도 들어갈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하는 '나'의 체념에서는 원룸촌을 전전하는 우리 2030의 짠내마저 느껴진다.

 

개정전 177p & 개정판 201p

(개정 전) 그동안 모은 전 재산이 얼마나 되더라. 치사하고 더럽지만 아버지에게 조금 보태달라고 해야 하나. 아니 당분간 쪽방촌에 몸 부칠 정도는 될 거 같은데.

(개정 후) 동안 모은 전 재산이 얼마나 되더라. 치사하고 더러워도 아버지에게 조금 보태달라고 해야겠지. 고시원에 미성년자도 입실 가능한지 알아볼까. 피시방을 전전하며 살 수는 없고.


'나'의 새로운 목소리 덕에, 독자들은 청소년-성인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주인공의 상황과 심경에 더 쉽게 공감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 목소리 덕에, '누군가가 씹다 뱉어 버린 껌' 같은 삶에서 집요하게 단물을 뽑아내고야 말겠다는 주인공의 의지가 이제는 치기 어린 오기가 아니라, 영웅적인 생의 의지로 (적어도 30대 직장인인 나에게는) 더 쉽게 다가온다.

 

 

다음 포스트에서 계속...


1  50만 부짜리 베스트셀러를 왜 고쳤을까 (이번 포스트)

2 '청소년', '영어덜트' 문학에서 '문학'으로 (이번 포스트)

멈출 줄 모르는 '악몽의 인과율' (다음 포스트)

'단지 이 자리에' 있었을 뿐이니까 (다음 포스트)

5  '부서진' 선택에 대한 이야기

6  성장의 마법, 성장의 문법

 

 

구병모 <위저드 베이커리> 리뷰대회 수상작 - 성장의 마법, 성장의 문법 #2

2022년 7월에 진행된 창비의 <위저드 베이커리> 개정판 리뷰대회 수상작 연재 포스트입니다. 지난 포스트는 아래를 확인해주세요. 1 50만 부짜리 베스트셀러를 왜 고쳤을까 (이전 포스트) 2 '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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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위저드 베이커리> 리뷰대회 수상작 - 성장의 마법, 성장의 문법 #3

2022년 7월에 있었던 창비의 <위저드 베이커리> 개정판 리뷰대회 수상작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지난 포스트는 아래를 확인해주세요. 1 50만 부짜리 베스트셀러를 왜 고쳤을까 2 '청소년', '영어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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