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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아메리 <자유죽음> 리뷰대회 자유상 - 죽음의 농담이 뱉어낸 자유의 비밀

mayiread 2022. 9. 11. 15:08

 

 

 

위즈덤하우스에서 8월에 진행했던 <자유죽음> 리뷰대회에서 가장 작은 '자유상'을 받았던 글을 남깁니다. 자살에 대한 어둡고 무거운 글을 유난히도 희극적으로 읽었던 것 같은데, 심사위원이셨던 유진목 시인께는 어쩌면 너무 가볍게 다가갔을지도 모르겠네요.

 

[알라딘서재]위즈덤하우스 <자유죽음> 리뷰 대회 이벤트 당첨자 발표

2022년 8월 2일부터 8월 22일까지 진행된 위즈덤하우스 <자유죽음> 리뷰 대회 이벤트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이벤트에 당첨되신 분들 모두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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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 대한 평가와 관계없이, <자유죽음>은 어쩌면 가장 현대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가는 이유와 의미를 찾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고, 생각깨나 했다는 사상가들부터 청중을 사로잡는 엔터테이너들까지 모두 '죽음'을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것이 그런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말하고 있으니까요.

 

'죽음'과 '끝'에 대해 이야기하는 예능인들. 순서대로 루이 CK, 팀 민친, TV쇼 <굿플레이스> (출처: 씨네 21, UWA, IMDb)

 

 

<자유죽음>이 독자들로 하여금 죽음에 다가가게 하는 방식도 남달랐습니다. 알베르 카뮈가 <시지프 신화>를 열며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라고 말했을 때에는 인생에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를 판단하려는 (답도 없이) 거창한 철학적 야망을 느꼈다면, 장 아메리라는 이름의 노작가에게선 나치의 잔인한 고문과 수용소에서의 혹독한 노역을 살아남은 백전노장의 여유로운 자부심만을 느낍니다. (머리가 벗겨진 장 아메리가 루이 CK와 비슷해보이는 건 역시나 기분탓이겠죠?)

 

알베르 카뮈(왼쪽)아 장 아메리(오른쪽) (출처: The New Yorker & The Charnel-House)

 

그래서인지, 거창한 문제로 야심 차게 포문을 열어놓고는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당위적 문장이나 던지며 무책임하게 도망가는 카뮈의 글보다, 치열하게 자살을 사유하고 받아들이면 저절로 휘파람을 불며 살아갈 수 있게 됨을 알려주는 장 아메리의 지혜가 더 자연스럽게 공감되었습니다. 다른 독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으면 싶네요.

 

자유죽음

‘자살’을 사유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현대 자살론의 고전 《자유죽음》. 아우슈비츠에서 생환한 작가 장 아메리는 이 책에서 인간의 자유와 죽음, 그리고 자살에 대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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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농담이 뱉어낸 자유의 비밀


기이하다. 죽음의 어둠을 직시하는 육중한 텍스트인데, 자살자의 정신으로 성큼성큼 헤쳐 나아가는 강인한 텍스트인데, 책을 덮을 때까지 줄곧 희극인들의 들뜬 목소리가 떠오른다.

 

장 아메리가 “생명은 최고의 자산이 아니다.”라고 쓰면(40p), 머리가 벗겨진 뚱뚱한 코미디언, 루이 C.K.가 무대에 오른다. 멀끔한 양복을 입고는 태연하게 ‘생명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자, 청중이 실소인지 폭소인지 모를 웃음을 터뜨린다. 루이 C.K.는 강변한다. 우리가 싫어하는 그 모든 게 ‘삶(life)’에 들어 있는데, 도대체 왜들 그렇게 생명(life)을 중요시하는 거냐고. 그렇게도 뭣같은 삶을 우리는 왜 다들 이렇게도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거냐고.

 

 

루이 C.K. 2017 |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이름이 보증 수표인 루이 C.K.가 돌아왔다. 이번 스탠드업 코미디쇼에서는 종교, 영원한 사랑, 개와 항우울제의 상관관계, 이메일 싸움 등의 주제를 특유의 썰로 풀어낸다. 브레이크 없는 유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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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만 하기 때문에 살아야 하는 인생이라는 것은 없다(119p).”라는 장 아메리의 문장에도, 이 대머리 아저씨가 끼어든다. 정말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 필요는 전혀 없다고. 사실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무시무시한 소환장 같은 게 날아와도 걱정 없다고. 그냥 자살해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자살은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그저 질 나쁜 농담일 뿐이라고 웃어넘겨 버리려는 찰나, 장 아메리가 ‘수험생의 상황’에 처한 우리의 모습을 그려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숙제로 가득한 삶을 살아내는 우리 모두에게 장 아메리가 범상치 않은 모범답안을 들려준다.

 

저, 죄송하지만 제가 존경해마지 않는 시험관님, 저는 문제를 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호라티우스와 횔덜린과 모든 공식을 깨끗이 무시하고 휘파람이나 불렵니다. 저한테 원하시는 게 뭔가요? 시험에 떨어진다고요? 그래서요? ... 나는 ... 내 머리를 총으로 쏘리라. (230p)

 

‘육신의 요구(165p)’와 생명 논리의 ‘달콤한 유혹(167p)’을 결연하게 끊어낸 정신에게서, 우리는 기묘한 맹랑함과 당당함을 느낀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 맹랑함과 당당함은 우리에게 뭣같은 삶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고 경이롭게 살아낼 에너지를 준다. “죽기로 각오한 당당함은 삶의 길을 열어준다(264p).”

 

하지만 이 역설은 오로지 ‘삶이 탄생의 순간부터 죽어감(264p)’이었기에 작동하는 것이다. 삶의 이야기가 ‘그 삶이 어떤 것이든 간에, 실패의 이야기(225p)’이기 때문에 작동하는 것이다. 생의 부조리와 무의미함에 대해 역설하는 장 아메리와 사르트르의 글 너머로, 이번엔 헝클어진 머리로 우스꽝스러운 가사를 써대는 뮤지컬 작가, 팀 민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37.9세의 ‘대선배’가 되어 앞날 창창한 모교의 졸업생들 앞에서 ‘인생의 교훈’을 읊어댄다. 우주에서 의미를 찾는 짓은 요리책에서 운율을 찾는 짓하고 똑같다고. 그런 짓을 하다간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요리마저도 망쳐버릴 거라고. 아무 의미 없는 이 우주에서 유일한 ‘낭만’을 하나 알려주겠다고. 그건 당신들 모두 다 곧 죽을 거라는 사실이라고. 그러니 머나먼 성취나 꿈꾸는 야망 따위는 내려놓고 어차피 죽을 인생을 마음대로, 빽빽하게 채워보라고.

 

 

명예박사의 조언 덕분일까. 장 아메리의 글로 돌아와 보면, 그가 죽음보다도 자유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고 있음이 보인다. 장 아메리는 지금 당장 목을 매거나, 발코니 밖으로 몸을 던지라고 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죽음마저도 결연한 선택의 대상으로 삼으라고, 죽음이 오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죽음에 곧장 먼저 다가가보라고 말한다. 그러면 죽음의 농담이 자유의 비밀을 뱉어낼 거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책도, 자살에 대한 책도 아닌, 자유의 비밀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을 읽을 이들에게 미리 그 비밀을 말해줘 버리련다. 그래, 자유는 우리 수험생들에게 언제 자기 머리에 총을 쏠지를 일러준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자유는 우리에게 언제 휘파람을 불지도 알려준다.

 

66세에 호텔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거둔 장 아메리는, 정작 자기 뼈를 으스러뜨리는 나치의 고문장과 수용소에서는 자살하지 않았다(266-267p). 자유가 그의 귓속에 ‘네 목숨은 오로지 네 거야.’라고 속삭여줬기 때문이었다면, 장 아메리는 자기 목숨을 남의 손에 넘길 수는 없다는 오기로 이를 갈며, 태연하게 휘파람을 불었을 것이다. 혹시 아는가. 나치들의 연극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엿이나 먹게(231p)’라고도 덧붙였을지.

 

그러니 자 어서, 우리 모두 언제 어디서 자기 머리에 총을 쏠지 정해보자. 처음엔 진지하게. 소름 끼치도록 구체적으로. 그리고 죽음의 농담이 들려올 때가 되면, 홀가분하게 웃어버리자. 그러면 우리는 마침내, 험상궂은 표정으로 우리 앞에 앉아 있는 삶의 시험관들에게 태연하게 휘파람을 불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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