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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하민 라바투트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리뷰대회 수상작 - 과학의 초록 열병을 앓는 영웅들의 비극

mayiread 2022. 9. 25. 22:47

 

 

 

왜, 어떻게 읽었는지

문학동네에서 8월에 진행했던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리뷰대회에서 가장 작은 보상인 '북캉스 간식 세트'를 받았던 글을 남깁니다. 처음엔 몇만 원만 쥐어줘도 '세상에... 감사합니다...' 했었는데, 마음이 그새 간사해진 걸까요. '내 글이 과자 몇 개값이었다니...' 하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습니다.

 

[알라딘서재]문학동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이벤트 당첨자 발표

2022년 8월 5일부터 8월 19일까지 진행된 문학동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이벤트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이벤트에 당첨되신 분들 모두 축하드립니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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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가 제일 좋았던 북캉스 간식 세트. 문학동네, 고맙습니다.

 

 

제가 쓴 리뷰의 하찮음과는 무관하게,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는 매우 지적인 책입니다. 추천사를 쓴 김상욱 교수가 '물리 영웅'이라 표현한 과학사의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들을 환상적이면서도 실감나는 문체로 살려낸 논픽션 소설인데요. 아인슈타인, 슈바르츠실트,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닐스 보어 등 누구나 분명 한 번쯤은 들어봤을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칠레의 젊은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의 세번째 작품으로, 2021 부커상 최종심에 오르며 전 세계적 화제를 불러일으킨 논픽션소설이다. 책에 실린 다섯 개의 글은 개별적이면서도 나선처럼 이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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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이 필요 없는 아인슈타인(좌측)과 그의 방정식에 해를 제공한 슈바르츠실트(우측) (출처: 노벨사이언스, 위키피디아)

 

양자역학 발전사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있었던 하이젠베르크(좌측 왼쪽), 닐스 보어(좌측 오른쪽), 슈뢰딩거(우측) (출처: 위키피디아)

 

일반적인 교양과학서였다면 이들은 과학영웅으로 그려졌을 것입니다. 천재적인 직관으로 세계의 비밀을 파헤쳐내고, 이를 근면하게 공식화하여 세상에 이로운 결과물을 내놓는 그런 영웅 말이죠. 실제로 김상욱 교수 또한 문학동네와의 인터뷰 영상에서 이 '물리 영웅'들을 찬양해 마지 않으며, 물리학이야말로 세상을 이해하는 학문이라고, 양자역학은 역사상 가장 정밀한 학문이라고 열변을 토합니다.

 

 

 

하지만 저자인 라바투트는 이들의 이야기를 아주 기이한 방식으로 다룹니다. 그는 과학사의 가장 위대한 발견들을 가능하게 한 병적인 광기와 열기는 물론이고, 그 발견들이 가져온 참혹한 현실에 더 집중합니다. 그리고 그 위대한 발견 뒤에 찾아오는 허망함의 순간들을 조명합니다. 라바투트의 세계에서 지적 한계는 단순히 '불확정성의 원리'가 예측하는 관측의 한계가 아닙니다. 라바투트는 과학 밖의 세상의 모습을 이해하길 멈춘 우리의 모습을 조명합니다. 그의 이야기들은 분명 허구이지만, 독자들은 어떤 소설적 진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드 브로이는 물리학의 '교황'인 아인슈타인의 축성을 받고도 결국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말며, 김상욱의 물리 영웅이어야 할 슈뢰딩거는 상자 속 고양이의 이야기를 통해 이 모든 게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이야기인지를 사람들에게 설득시키려 하지만 오히려 그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아연실색할 뿐입니다. <Un Verdor Terrible>(A Terrible Greening)이라는 원제에서 느껴지듯, 이 이야기는 영웅적이라기보다는 비극적이고, 예언적입니다.

 

 

When We Cease to Understand the World by Benjamín Labatut review – the dark side of science

An extraordinary ‘non-fiction novel’ weaves a web of associations between the founders of quantum mechanics and the evils of two world wars

www.theguardian.com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어쨌든, 그래서 아래와 같은 리뷰를 썼습니다. 이 책을 읽은 다른 분들은 어떤 느낌이셨을지 궁금하네요. 혹시나 리뷰를 쓰신 분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읽어 보러 놀러 가겠습니다.

 

 

 

과학의 초록 열병을 앓는 영웅들의 비극


분명 추천사대로 라바투트의 이야기들에는 과학계의 ‘영웅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라바투트의 영웅담은 기이하다. 여타의 과학영웅담이라면 가공할 천재가 뛰어난 직관력을 통해 자명한 자연법칙을 꿰뚫어보고, 근면하게 이를 공식화하여 온 세상을 이롭게 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명확한 답을 준다. 과학이 어떻게 우리에게 새로운 앎과 풍요를 가져다주었는지. 앞으로도 우리가 과학의 힘으로 얼마나 끈질기게 앎을 추구해나갈 것인지.

 

하지만 라바투트의 영웅들은 광기와 이성, 살상과 구제, 절망과 희열의 두 땅에 모두 발을 걸치고 있다. 세상을 위험에 빠뜨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은둔의 길을 택하는 이들에게,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사명감은 사치다. 이들은 어제 자신이 썼던 방정식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우주에 대한 이들의 직관은 과대망상인지 통찰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다. 다행히 통찰로 드러나더라도 계속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한 때 ‘물리학의 교황’이 축성한 공작도, 다른 때에는 가차 없는 공격과 멸시를 견뎌야 하니까. 이 무상하고 무정한 과학의 논리 앞에서 독자들도 무언가를 잃어버린다. 지도교수에게 ‘복종’하던 다락방 위 물리학자의 불확정성 이론이 한 번도 반증되지 않았다는 결말에서, 독자들은 더 이상 경외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쯤 되면 라바투트의 이 기이한 영웅담은 고전적인 영웅 비극으로 읽힌다. 이 비극에서 영웅은 과학의 초록 영약을 얻는다. 밤의 정원사는 경고한다. 그 약은 ‘모든 생명을 질식시킬 수 있는 끔찍한 초록’의 가스일 수도, 아원자 세계의 신비를 깨치게 해주는 ‘초록색 액체’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영웅은 오만한 확신에 차서, 혹은 금단의 지식에 대한 갈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영약을 삼킨다. 그는 곧 광기와 열병에 시달린다. 그러다 문득 천재적 계시가 내려와 그가 맺을 지혜의 열매를 보여준다. 레몬 열매다. 레몬은 점점 더 많이 열린다. 레몬은 멈추지 않고 끝도 없이 열린다. 영웅의 온몸이 부러져 쓰러질 때까지. 그렇게 그는 땅 위에서 수많은 레몬과 함께 썩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영웅은 이 계시가 언젠가 실현될 것이 두렵지만, 이미 몸속에 쌓여버린 초록 비소를 뽑아낼 방법은 없다. 그래서 계속 두려움에 떨며 살아간다.

 

이런 독해의 가장 큰 난점은 그 ‘영웅’이 도대체 누구냐는 것이다. 셸레인가. 하버인가. 하이젠베르크인가. 그 때 하이젠베르크에게 초록색 액체를 내밀었던 주정뱅이가 입을 연다. 

 

“나는 우리 시대의 모든 거대한 재앙에 대해 이야기해요. 비극, 집단 학살, 공포에 대해서요. ... 오늘날은 우리 모두가 희생자입니다. ... 이 어마어마한 지옥이 ... 당신 같은 사람들 탓이 아니라면 누구 탓이겠습니까? ... 이 모든 광기는 어디서 시작됐지요? 언제부터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춘 겁니까?

 

레몬 나무의 비극적 운명에서 ‘인류의 마구잡이식 파괴적 성장’을 읽어내는 작가에게, 우리 모두는 자기 운명의 희생자이자, 이 비극의 영웅이다. 이 비극은 답을 주지 않고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어떤 과학자는 열변을 토한다. 물리학이야말로 세상을 이해하는 학문이라고. 양자역학은 불확정성을 전제로 하지만 사실 인류 역사상 가장 정밀한 과학이라고. 주정뱅이의 질문은 답을 찾지 못하고 침묵한 채, 책 표지에 자리를 잡는다. 덕분에 독자들은, 과학의 초록 열병을 앓고 있는 우리 모두가 언제부터 거대한 재앙들을 불러일으켜 온 건지, 그리고 이 재앙들을 목도하길 끊임없이 외면하는 그 광기는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된 건지, 지혜의 열매를 끝도 없이 갈망하는 우리가 왜 정작 세상을 이해하길 멈춰버린 건지, 여전히 물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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