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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위저드 베이커리> 리뷰대회 수상작 - 성장의 마법, 성장의 문법 #2

mayiread 2022. 9. 11. 14:15

 

2022년 7월에 진행된 창비의 <위저드 베이커리> 개정판 리뷰대회 수상작 연재 포스트입니다. 지난 포스트는 아래를 확인해주세요.


1 50만 부짜리 베스트셀러를 왜 고쳤을까 (이전 포스트)

'청소년', '영어덜트' 문학에서 '문학'으로 (이전 포스트)

멈출 줄 모르는 '악몽의 인과율' (이번 포스트)

'단지 이 자리에' 있었을 뿐이니까 (이번 포스트)

5  '부서진' 선택에 대한 이야기 (다음 포스트)

6  성장의 마법, 성장의 문법 (다음 포스트)

 

 

구병모 <위저드 베이커리> 리뷰대회 수상작 - 성장의 마법, 성장의 문법 #1

2022년 7월, 창비에서 <위저드 베이커리> 개정판 출간을 기념해 리뷰대회를 공모했습니다. 앞으로 연재할 리뷰는 본 공모에서 '체인 월넛 프레첼'이라는 엄청난 이름의 상을 수상한 것인데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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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출 줄 모르는 '악몽의 인과율'

사뭇 더 어른스러워진 주인공이 영웅적인 생의 의지를 보여준다라... 거창하다. 언뜻 들으면 의지만 있으면 모든 걸 할 수 있다 하는 자기계발서에나 어울리는 한줄평 같다. 하지만 구병모의 주인공은 자기계발서의 성공 신화와는 거리가 멀다. 아래 대사를 질겅질겅 씹어내듯 읊조리는 '나'의 목소리는 거창하다기보다 처절하다.

 

<위저드 베이커리> 개정판, 241p

누군가가 씹다 뱉어 버린 껌 같은 삶이라도 나는 그걸 견디어 그 속에 얼마 남지 않은 단물까지 집요하게 뽑을 것이다.

 

'누군가가 씹다 뱉어 버린 껌 같은 삶'이라니. 도대체 그 인생이 얼마나 처절하길래.

 

 

일단 어머니부터. 남편의 소아성애 성향을 알게 된 후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다. 결국 어머니는 '나'를 청량리 역에 유기한 뒤 혼자 손목을 그어 자살하려 하고, 그마저도 실패하자 거실에서 남편의 허리띠로 목을 메 자살한다. '나'의 아버지는 얼마간 '나'를 혼자 키우다 어린 딸이 있는 여인 배 선생과 재혼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의붓딸이 된 무희를 성폭행한다.

 

무희는 혼란 속에서 아버지가 아닌 '나'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그러니 배 선생,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아버지와 재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리려 했더니 의붓아들인 '나'가 영 협조해주지 않아 고까웠는데, 딸을 성폭행했다니 죽일 듯이 달려드는 건 당연하다. 심각한 말더듬이인 '나'는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자신도 없다. 무작정 도망친다. '위저드 베이커리'로.

 

이유진 일러스트레이터의 '책끝을접다' <위저드 베이커리> 콘텐츠 (출처: 책끝을접다) 

 

그 빵집 점장이 빵에 머리카락을 넣는 이유

[BY 책끝을접다] #위저드베이커리 #구병모 #소설 #한국소설 #책끝을접다 #책끝 #독서 #추천도서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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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삶은 그 속에 엮여든 이들의 욕망, 기대, 실망의 소용돌이 속에 '어쩔 수 없이' 빨려 들어간다. 아버지는 소아성애자로 태어났고, 이혼녀가 된 배 선생은 당연하게도 더 나은 결혼 생활을 꿈꾼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자기 욕망이 불러올 결과를 모르는 듯, 혹은 모르는 척하며 살아가고, 그 파괴적인 귀결은 당연하다는 듯 모두 '나'에게 가닿는다.

 

그리고 이런 주인공을 둘러싼 가정사는 마법의 빵집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다 갖게 된 질투와 애욕에 눈멀어 마법에 기대었다가 서로를 죽이고, 다치게 하고, 원망하는 이들의 이야기들은, 그 세부 사항만을 달리할 뿐 잔인하리만치 천편일률적이다. 하지만 그 획일성은, 이 이야기들의 진부함에서가 아니라, 열에너지의 물리 법칙처럼 스스로를 해체하는 욕망의 필연적 인과율이 지닌 무정하고 날카로운 정확성에 기인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마법의 빵들 일러스트. 상대에게 위해를 가하는 무시무시한 빵들도 있다. (출처: 책끝을접다) 

 

심사위원들이 구병모의 소설을 다음과 같이 평하는 건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심사평 中

마법의 세계에서마저 멈추지 않고 작동하는 저 악몽의 인과율을 간파해냈다는 점만으로도 이 작품은 새롭고 무섭고 거세다.

 

위저드 베이커리 | 창비 – Changbi Publishers

-요청 사항? 그렇게 많지 않아요. 저는 과자를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맛을 잘 느낄 줄 모르는 불행한 미각을 갖고 있거든요. 그저 많이 달거나 느끼하지만 않으면 돼요. 아 참, 건포도를 포함

www.changbi.com

 

 

 

'단지 이 자리에' 있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구병모는 이 '악몽의 인과율'을 살아내야 하는 주인공을 동정하지 않는다. 주변 인물들을 원망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당연하다. 이 모든 게 인과율이라면, 때문에 거기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면, 그건 누구 한 두 사람만의 잘못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주인공은 너무나도 쿨하다. 자기도 사연 많은 인생을 살고 있으면서, 어른들의 드라마에 딱히 관심이 없다. 아니 애초에 감정적 드라마 자체에 관심이 없다. 엄마의 빈자리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도, 무관심한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나야 하는 처지에 대한 자기 연민도 없이, 그저 자기 몫의 삶을 겨우겨우 바쁘게 살아낼 뿐이다.

 

<위저드 베이커리> 개정판, 24p

... 배 선생도 나름 불안했던 모양이다. 내가 텔레비전 드라마 속의 사춘기 아이처럼 당신 같은 건 엄마로 인정할 수 없어! 하며 등교 거부에 들어가거나 ... 촌스러운 반항이라도 할 줄 알았나. ... 그렇다면 한참 잘못 짚었다. 그런 마음을 먹을 만큼 나는 엄마의 빈자리를 아쉬워해 본 적이 없었고, 그런 귀찮은 감정적 몸부림을 칠 만큼 아버지와의 관계가 돈독하지도 않았다.

 

<위저드 베이커리> 개정판, 33p

배 선생은 최초의 결혼 생활이 실패로 돌아간 뒤 그것을 새 남편에게서 보상받고 싶어 했으나, 아버지는 기대에 부응해 주지 않았다. ... 그러나 그녀의 개인적 아픔을 이해한다고 해서 전처 아들인 내가 그 상처를 보듬어 줄 의리나 책임은 ......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 것 같았다. 일단 내 코가 석자였다. 부탁이야, 아버지를 증오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배터리가 모자라, 제발. 나는 언젠가 스스로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무언가를 두 손에 쥐게 되면, 그대로 떠나 버릴 사람이야.

 

 

그렇다고 주인공이 자기밖에 모르는 편협하고 속 좁은 인물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나'는 누명과 오해 때문에 도망자 신세가 된 그 순간에 조차,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무희를 원망하지 않는다.

 

<위저드 베이커리> 개정판, 55p

뛰쳐나가기 직전에, 아직도 코피를 흘리며 방문 앞에 쭈뼛거리고 서 있는 무희와 눈이 살짝 마주친 것 같았다. 여유를 부릴 시간은 없었지만 적어도 네 잘못은 아니라고 살짝 고개를 끄덕여 줄 수는 있었다. 그 애가 고통스러운 순간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순간적으로 곁에 있는 아무나인 나를 지목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사실 주인공은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모두가 원해서 이 모양 이 꼴로 살아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애초에 바란 적도 없는 삶이 덜컥 주어져 '살아내야만 하는' 건 모두 매한가지라는 걸. 주인공이 타인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 그건 삶의 조건에 대한 이러한 이해 속에서만 가능했던 것이리라.

 

<위저드 베이커리> 개정판, 36p, 40p

...... 그렇지만 그게 내 탓은 아니잖아. 나는 단지 거기 존재했을 뿐인데.

나는 단지 이 자리에 있었을 뿐인데, 내가 원해서 내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보면, 주인공인 '나'는 사실 딱히 성장할 필요가 없는, 이미 너무나도 성숙한 존재다. 그의 성장에 필요한 건 사실 성숙함이나 어른스러움이 아니다. 이미 주인공 자신이 잘 알고 있고 원하고 있듯, '나'에게는 '스스로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무언가를 두 손에' 쥘 수 있는 기반과 터가 필요할 뿐이다. 그렇다면 구병모는 소설의 끝에서 주인공의 두 손에 '스스로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무언가'를 쥐어줄까.

 

 

 

다음 포스트에서 계속...


1  50만 부짜리 베스트셀러를 왜 고쳤을까 (이전 포스트)

2 '청소년', '영어덜트' 문학에서 '문학'으로 (이전 포스트)

멈출 줄 모르는 '악몽의 인과율' (이번 포스트)

'단지 이 자리에' 있었을 뿐이니까(이번 포스트)

 '부서진' 선택에 대한 이야기 (다음 포스트)

 성장의 마법, 성장의 문법 (다음 포스트)

 

 

구병모 <위저드 베이커리> 리뷰대회 수상작 - 성장의 마법, 성장의 문법 #3

2022년 7월에 있었던 창비의 <위저드 베이커리> 개정판 리뷰대회 수상작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지난 포스트는 아래를 확인해주세요. 1 50만 부짜리 베스트셀러를 왜 고쳤을까 2 '청소년', '영어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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