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 어떻게 읽어야 할까?
보르헤스의 글은 꽤, 때로는 너무, 난해하다.
도서관 사서로 있으며 눈이 멀 정도로 책을 읽어댄 그가 온갖 인유(allusion)로 글을 도배하기 때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객관적 사실'이라는 개념에 그가 도전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최낙원 교수님이 아래 링크된 글에서 이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신다.
요약하자면, 보르헤스는 미로를 소재로 하는 소설이나, 가짜 문헌, 가짜 주석 등을 활용한 소설을 통해, 유일한 하나의 진실-사실(객관적 리얼리티)이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담아낸다는 것인데, 때문에 그의 작풍을 '환상적 사실주의 realismo fantastico', '거짓 사실주의 pseudo-realismo'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이런 보르헤스의 생각에 따르면 모든 글은 사실적 '기록'이 아니라 주관적인 '해석'이고, '사실'과 '허구'는 구별할 수 없으며, 그렇기에 작가의 일은 세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거나 불변의 진리를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다양한 가상의 텍스트를 인용하고 조직하여, '객관적 사실'이나 '진리'가 결여된 불확실하고 혼미한 미로 같은 세계 속에서, 독자와 작가가 모두 다양한 자아의 가능성을 풍부하게 경험하고 유희하게 하는 일이 된다.
실제로 보르헤스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글짓기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한 바 있다.
마음산책, <보르헤스의 말>, 219~221p
리드
내 질문은 언젠가 당신이 했던 정말로 중요한 발언으로 시작해요.
"나는 허구(fiction)를 쓰지 않는다. 사실(fact)을 창조한다."
...
보르헤스
내가 그 말을 했다면 잘한 거네요.
...
리드
그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허구를 쓰지 않는다. 사실을 창조한다
보르헤스
사실과 허구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그 어떤 것도 확실히 알 수 없어요... 우리는 매우 불가사의한 우주에서 살고 있어요. 모든 게 수수께끼지요.
그러니 보르헤스를 무턱대고 읽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글이 '정말로 객관적 사실이나 절대적 진실 같은 게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랄까.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알레프> 읽기
보르헤스의 가장 대표적인 두 단편집 중 하나인 <알레프>. 총 17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또 다른 대표적인 단편집은 <픽션들>로, 역시나 1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바벨의 도서관'과 같은 보르헤스의 대표작들을 만날 수 있는데, 보르헤스 인터뷰집인 <보르헤스의 말> 리뷰에서 함께 다룰 예정.
<알레프>는 책 끝에 보르헤스가 직접 후기를 썼는데, 각 단편을 이해하는 데 꽤나 큰 실마리가 되어준다. 그러니 매 단편을 읽기 전마다 후기에서 관련 단편에 대한 보르헤스의 이야기를 찾아볼 것.
앞으로 여러 개의 연재 포스트를 통해 보르헤스의 단편들을 살펴볼 예정인데, 개인적으로 '객관적 사실'에 대한 보르헤스의 작가로서의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단편이라 생각하는 '아베로에스의 탐색'부터 시작해보겠다.
아베로에스의 탐색
아스테리온의 집
독일 레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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