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보르헤스

보르헤스 <알레프>, 가련한 '아스테리온의 집'

mayiread 2022. 3. 15. 18:04

 

보르헤스의 대표 단편집 중 하나인, <알레프>의 수록 작품들을 읽고 정리하고 있다.

 

첫 번째 포스팅에선 최낙원 교수님의 글을 빌어, 난해한 보르헤스의 작품들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해보았고, 두 번째 포스팅에선 '객관적 사실'을 대하는 보르헤스의 작가로서의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단편, '아베로에스의 탐색'을 살펴보았다.

 


보르헤스, 어떻게 읽어야 할까?

 

보르헤스 <알레프>, 보르헤스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보르헤스, 어떻게 읽어야 할까? 보르헤스의 글은 꽤, 때로는 너무, 난해하다. 도서관 사서로 있으며 눈이 멀 정도로 책을 읽어댄 그가 온갖 인유(allusion)로 글을 도배하기 때문도 있지만, 무엇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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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로에스의 탐색

 

보르헤스 <알레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아베로에스의 탐색'

보르헤스의 대표 단편집, <알레프>의 작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난해한 보르헤스의 작품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 최낙원 교수님의 글을 빌어 저번 포스트에 간단히 정리해보았다. 보르헤스 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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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는 아베로에스를 포함해 자신의 단편 속 주인공들을 동정하거나 불쌍히 여기는 (할아버지 같은)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데, 이 포스팅에서 살펴볼 '아스테리온'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가련한(?) 아스테리온

보르헤스는 후기에서 아스테리온을 '그 가련한 주인공'이라고 부르는데(218p), '아스테리온의 집'의 마지막 대사에서 드러나는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미노타우르스. 아스테리온은 미노타우르스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알레프>, 89p

"믿을 수 있어, 아리아드네?" 테세우스가 말했다.
"미노타우르스는 거의 방어하려고도 하지 않았어."

 

그런데 미노타우르스라면 미로 속에서 사람을 제물로 잡아먹었다던 그 괴수가 아닌가. 피 냄새 가득한 음침한 미로와 무시무시하게 생긴 괴수의 이미지를 아무리 떠올려봐도 '가련하다'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미노타우르스가 살던 미로&#44; 모자이크 작품.
크레테의 왕 미노스가 자기 아들이 반인반수의 괴물로 태어난 걸 알고 섬에 미로를 짓고 가두었다고 한다. (출처: historymates.com)

 

Michael Ayrton이 그린 Minotaur Risen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9년에 한 번씩 14명의 젊은이들을 미노타우르스에게 제물로 바쳤다고. (출처: HOPE 대학 사이트)

 

 

기괴하고 끔찍한 반인반수를 '가련하다'고 표현하는 보르헤스, 자신이 직접 쓴 후기에서 George Frederic Watts의 그림, <The Minotaur>(왼쪽)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적고 있다. 사람의 살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있는 다른 미노타우르스의 그림과 비교해보면 사뭇 다른 느낌이 들기는 하는데, 글쎄 이 글을 읽고 있을 독자분들도 비슷하게 느끼실지는 모르겠다.

 

조지 왓츠의 미노타우르스매기 햄블리의 미노타우르스 그림
좌측이 George Frederic Watts의 The Minotaur. 우측이 Maggi Hambling의 Minotaur Surprised while Eating (출처: TATE 박물관 사이트)

 

 

어쨌거나 그림을 그린 George Watts는 아동 성매매를 일삼는 런던의 뒤틀린 성욕을 비판하며, '짐승 같고 잔인한' 이들에 대한 혐오를 보여주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고 말한다. 자신의 먹이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먼바다를 내다보는 탐욕스러운 시선, 그 탐욕에 눈이 멀어 죄 없는 작은 새를 왼쪽 앞발로 짓눌러 죽이고 있는 짐승 같은 잔인함. Watts는 그런 것들을 담아내려고 했던 것 같다.

 

Art Journal, 1885, p.322

When The Minotaur was first shown, at the Liverpool Autumn exhibition of 1885, Watts explained that his aim in painting it had been 'to hold up to detestation the bestial and brutal'...

 

 

하지만 보르헤스는 '아스테리온의 집'에서 미노타우르스를 미로에 갇힌 순진무구하고 타자화된 괴물로 그려낸다. 미로에서 혼자 뛰놀며 소꿉놀이를 하는 모습은 어린아이 같고, 자신을 미로 속의 고독에서 구해줄 구원자를 기다리다가 테세우스에게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죽임 당하는 모습은 애잔하기까지 하다.

 

<알레프>, 87p

당연하지만 내게 소일거리가 없는 건 아니다. 나는 돌진하려는 양처럼 어지러워 바닥에 나동그라질 때까지 돌로 만든 복도를 뛰어다닌다. ... 그러나 그토록 많은 놀이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또 다른 아스테리온의 놀이이다. 나는 그가 나를 찾아오고 그에게 우리 집을 보여주는 척한다. 나는 아주 정중하게 인사하면서 "그러면 이전의 교차로로 갑시다."나 "이제 또 다른 마당으로 나가 봅시다." ... 따위의 말을 한다. 가끔씩 나는 실수를 범하고, 그러면 우리 둘은 기분 좋게 웃는다.

 

<알레프>, 89p

나는 고독이 고통스럽지 않다. 그건 나를 구해 줄 사람이 살고 있고, 마침내 그가 일어나 먼지 위로 강림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 나를 복도들이 더 적고 문들이 더 적은 곳으로 데려다준다면 좋으련만. 내 구원자는 어떻게 생겼을까? 나는 생각한다. 그는 황소일까 아니면 사람일까? 혹시 사람의 얼굴을 지닌 황소일까? 아니면 나처럼 생겼을까?

 

그리고 이 시점에서 Watts의 미노타우르스를 다시 살펴보면, Watts 자신의 설명과는 다른 미노타우르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미로에 갇혀 먼바다를 바라보는 뒷모습은 사실 안타깝도록 외롭게 비치고, 멍하니 입을 벌린 그의 옆모습에서는 잔인한 폭력성보다는 순진한 무지함이 느껴진다.

 

 

 

아스테리온은 누구의 초상일까?

그렇다면 보르헤스는  아스테리온을 미로 속에 갇힌 타자화된 괴물로 그려냈을까? '혐오스럽고 부도덕한 인간상'을 담아낸 Watts의 미노타우르스를, 보르헤스는 왜 굳이 외롭고 순진무구한 존재로 다시 탄생시킨 걸까?

 

Watts의 그림 속 미노타우르스가 '영국 아동 성범죄자'의 초상이었다는 걸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보르헤스가 영웅과 악인, 선과 악, 일반인과 범죄자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괴물처럼 보이는 범죄자들도 사실은 외롭고 무지한, 타자화된 존재에 불과하다는 식의 해석이랄까.

 

하지만 보르헤스의 작품들은 ('아베로에스의 탐색'처럼) 작가 자신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이야기인 경우가 꽤나 많다. 실제로 보르헤스는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을 반복되는 미로의 악몽에 갇혀, '죽음'이라는 희망을 기다리는 외롭고 쓸쓸한 존재로 묘사하는데, 이는 미로에 갇혀 저항조차 하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인 미노타우르스의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다.

 

마음산책, <보르헤스의 말>, 283~284p

나는 악몽에서 소설의 플롯을 얻곤 했지요. 난 악몽을 아주 잘 알아요. 그걸 자주 꾸는데, 늘 똑같은 패턴을 따르죠. 미로의 악몽을 꾸곤 한답니다. 그건 언제나 내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어떤 특별한 장소에 있는 것으로 시작해요... 나는 그곳이라는 것을 알지만 거리의 모습은 아주 달라요...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하는데 찾지 못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이것이 미로의 악몽이라는 것도요. 왜냐하면 계속해서 나아가지만 같은 장소나 같은 방으로 거듭 되돌아오니까요.

 

<보르헤스의 말>, 159p

나는 울적할 때ㅡ간혹 울적한 기분에 빠져든답니다ㅡ죽음을 커다란 구원으로 생각하지요. ... 나는 죽음을 희망으로, 완전히 소멸되고 지워지는 희망으로 생각하는데, 그 점이 의지가 되는 거예요.

 

<보르헤스의 말>, 31~32p

개인적으로 나는 사후 세계를 믿지 않아요. 난 그대로 끝나기를 바란답니다. 기분이 언짢을 때, 걱정이 있을 때ㅡ나는 늘 걱정을 해요ㅡ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죠. 어느 순간에든 구원이 죽음이라는 소멸의 형태로 찾아올 텐데 뭐하러 걱정을 해?

 

보르헤스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 #2 - 보르헤스에게 '불멸'이란?

마음산책이 번역-출간한 보르헤스의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을 읽어보고 있다. 난해하고 미로 같은 글 뒤에 숨겨진, 동네 이야기꾼 할아버지 같은 보르헤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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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말>의 표지 속 보르헤스. 보르헤스는 Watts가 그린 미노타우르스에게서 자신의 초상을 보았을까.
 

그렇다면 보르헤스는, '가장 바른' 주해를 쓰겠다며 달려들고서도 '우스꽝스러운 실수'를 저지른 아베로에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었던 것처럼, 미로 속에 갇힌 '타자화된 괴물' 아스테리온에게서도 자신의 초상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사실'과 '허구'가 분간이 되지 않을 만큼 혼란스러운 미로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자신, 그리고 그 미로를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미로 속을 발버둥 치며 헤매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구원을 기다리는 것임을 알고 있는 자신. 그런 보르헤스의 초상에서는 우리의 모습 또한 겹쳐 보이는 것 같다.

 

 

 

보르헤스는 굉장히 이해심이 깊은 작가였던 것 같다. 그는 실수 많은 학자와, 반인반수의 괴물은 물론이고, 사형 집행을 하루 앞둔 나치 전범에게도 이입해 굉장한 울림을 주는 서사를 써내는데, 다음 포스트에서 다룰 '독일 레퀴엠'이 그것이다.

 

 

보르헤스 <알레프>, 인류의 '독일 레퀴엠'

보르헤스의 대표 단편집 중 하나인, <알레프>의 수록 작품들을 읽고 정리하고 있다. 최낙원 교수님의 글을 빌어 보르헤스를 무턱대고 읽기 가장 쉬운 방법에 대해, 그리고 보르헤스가 그 깊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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