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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2 - 당신에겐 '원서'가 필요하다

mayiread 2023. 5. 8. 14:39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대해 다루는 연재 포스트들을 쓰고 있다. 지난 포스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지 않도록 설득하는 글이었다. 이 책에서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아렌트만의 논리 정연한 사유를 결코 찾을 수 없을 이니까.

 

그럼에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반드시 읽어야만 한다면, 그것은 정의와 악에 대한 아렌트의 통찰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렌트와 유대 민족이 나치즘으로부터 물려 받은 "폭력과 칼에 대한 믿음"을 발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아렌트가 아이히만을 위한 사형 선고문까지 쓰며 복수심을 충족시키는 모습은, 그 모습을 목도하는 이에게 모종의 감정적 진실을 경험하게 해준다.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 - 이 책을 읽지 말아야 할 이유

'읽어도 될까요' 블로그를 응원해주세요. 한 번씩 눌러주시는 광고와 좋아요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앞으로 여러 개의 포스트를 연재하며 한나 아렌트의 에 대해 다뤄보려 한다. 첫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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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알레프>, 인류의 '독일 레퀴엠'

보르헤스의 대표 단편집 중 하나인, 의 수록 작품들을 읽고 정리하고 있다. 최낙원 교수님의 글을 빌어 보르헤스를 무턱대고 읽기 가장 쉬운 방법에 대해, 그리고 보르헤스가 그 깊은 이해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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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래,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하다. 기껏해야 신문 연재 기사인데 못 읽을 것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 책, 정말 너무나도 읽기가 어렵다. 해도해도 너무할 정도다. 그래서 앞으로 몇 개의 포스트에 걸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고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대책 없이 책과 1:1로 씨름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빈다.

 

소개할 첫 번째 준비물은 바로 '원서'다.

 

 

 

당신에겐 '원서'가 필요하다

(포스트를 쓰고 있는 23년 5월 기준으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기로 결심한 대한민국의 독자라면, 선택지가 단 하나밖에 없다. 한길사가 독점 판권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독점 판권 계약이 끝나기 전까지는 다른 번역본은 구경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한길사가 김선욱 교수에게 번역을 의뢰한 이 역서는 그 평판이 참혹하다. 내 주관적인 감상을 덧붙일 필요도 없다. 리커버판에 달린 소비자들의 평가가 이를 여실히 보여주니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GB 100만 부 특별 리커버판)

한나 아렌트의 저작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꼽히는 책. 이 책에서 체계화 된 악의 평범성 에 대한 고찰은 악의 문제에 대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기여로 평가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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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표지 갈이' 상술과 저질 번역에 대한 참혹한(...) 평가들 (출처: 알라딘)

 

 

김선욱 교수가 자신의 역서에 대한 이러한 평판을 모를 리가 없다. 그래서 마음산책이 펴낸 인터뷰집 <한나 아렌트의 말>의 추천사에 아래와 같이 (굉장히 공감되는) 변론을 한다.

 

 

한나 아렌트의 말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20세기의 탁월한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인터뷰집이다. 주요작들을 출간하고 사상적 체계를 확립한 뒤인 1964년부터 말년인 1973년까지, 한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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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의 문장 자체가 너무 번역이 어렵다는 김선욱 교수의 변론 (출처: 알라딘)

 

 

개인적으로는 독자들의 불만과 김선욱 교수의 평가에 모두 공감한다. 적어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 한해서 한길사는 상술만을 생각하는 무책임한 출판사이고, 그 번역의 질은 처참하며, 그 큰 원인 중 하나는 저자인 한나 아렌트 자신이다. 나라도 (김선욱 교수처럼) 한나 아렌트의 저서를 읽으려는 일반인들에게 <한나 아렌트의 말>을 추천할 것 같다.

 

다만 독자들의 평가 중 단 한 가지는 공감할 수 없는데, 무엇인지 아시리라 생각한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역작도, 필독서도 아니다.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이 저서를 읽지 않기를 강력히 권고한다.

 


마음산책 대표가 직접 기획한 총서 '말' 시리즈는 칼 세이건, 헤밍웨이, 보르헤스, 한나 아렌트 등의 저명 학자, 사상가, 작가들의 인터뷰집을 번역해 총서로 묶은 것인데, 개인적으로 매우 애정하는 시리즈이다. 긴 사설 대신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의 기획 의도와 함께, 이 블로그에 포스트된 '말' 시리즈 리뷰들을 링크한다.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의 '말' 시리즈 기획 의도

독자는 작가와 직접 부딪쳐그의 ‘말’을 듣고 싶어 한다.

 

 

뜨겁진 않지만 꾸준히 사랑받는 ‘총서의 세계’

출판인에게 ‘팔릴 책’과 ‘내야 할 책’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쉽지 않다. 내야 할 책의 타깃이 대중이 아니라 소수라면 더욱 그렇다. 그것도 단행본이 아니라 총서(叢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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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말> 연재 포스트

#1 - 마초 셀레브러티를 넘어서

 

헤밍웨이 인터뷰집, <헤밍웨이의 말> #1 - 마초 셀러브러티를 넘어서

헤밍웨이에 대해 알려진 사실들을 떠올려보면, 대학 교과서나 마케팅 전단에서 본 것들이 대부분이다. ​로 노벨문학상 수상. 칵테일 다이키리를 즐겨 마심. 간결하고 생략이 많은 하드보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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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헤밍웨이에게 '진실된 글'이란?

 

헤밍웨이 인터뷰집, <헤밍웨이의 말> #2 - 헤밍웨이에게 '진실된 글'이란?

지난 포스트에 이어, 헤밍웨이의 인터뷰집 을 정리해보고 있다. 책을 번역하신 권진아 선생님의 서문 대로, '마초 셀러브러티' 뒤에 숨겨진 백전노장 작가로서의 헤밍웨이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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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헤밍웨이에게 '문체'란?

 

헤밍웨이 인터뷰집, <헤밍웨이의 말> #3 - 헤밍웨이에게 '문체'란?

헤밍웨이의 인터뷰집 을 통해 '마초 셀러브러티' 이미지에 가려진, 백전노장 작가로서의 헤밍웨이의 모습을 살펴보려 하고 있다. '진실된 글'에 대한 헤밍웨이의 생각을 다루었던 저번 글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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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헤밍웨이의 자살에 대해

 

헤밍웨이 인터뷰집, <헤밍웨이의 말> #4 - 헤밍웨이의 자살에 대해

헤밍웨이의 진솔하고 수줍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인터뷰집, 을 읽어보고 있다. 몇몇 유명 단편에서 만날 수 있는 유난히 생략 많고 불친절한 문체 때문에 여러 대중매체에서 묘사하는 헤밍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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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말> 연재 포스트

#1 - 동네 할아버지 보르헤스

 

보르헤스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 #1 - 동네 할아버지 보르헤스

마음산책은 인터뷰 총서인 '말' 시리즈를 출간해왔는데, 칼 세이건, 헤밍웨이, 코난 도일, 한나 아렌트와 같이 각계 저명인사들의 인터뷰집을 번역해 총서 형태로 묶은 것이다. ​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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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보르헤스에게 '불멸'이란?

 

보르헤스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 #2 - 보르헤스에게 '불멸'이란?

마음산책이 번역-출간한 보르헤스의 인터뷰집, 을 읽어보고 있다. 난해하고 미로 같은 글 뒤에 숨겨진, 동네 이야기꾼 할아버지 같은 보르헤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중한 책이다. 동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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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보르헤스에게 '망각'이란?

 

보르헤스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 #3 - 보르헤스에게 '망각'이란?

보르헤스의 진솔한 목소리를 직접 들어볼 수 있는 그의 인터뷰집 을 읽고 있다. 난해한 단편들의 저자답지 않게, 유머러스하고 장난끼 가득한 말투로 썰을 푸는 동네 할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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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보르헤스에게 '사실'과 '허구'란?

 

보르헤스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 #4 - 보르헤스에게 '사실'과 '허구'란?

보르헤스의 인터뷰집 을 읽어보며 아래 질문들을 던져보고 있다. 보르헤스의 작품을 읽었다면 누구나 궁금해할 법한 주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인터뷰 속 보르헤스의 말과 잘 알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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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보르헤스에게 '문학'이란?

 

보르헤스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 #5 - 보르헤스에게 '문학'이란?

보르헤스의 인터뷰집 과 그의 대표 단편 작품들에서 아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 있다. 보르헤스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면 누구나 물어봤을 법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보르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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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서에 대한 처참한 평가를 보여주고, 대안까지 제시하며, 엄청나게 스크롤을 해야 하는 수고까지 강요했음에도 당신은 이 글을 아직 읽고 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기어이 읽고야 말겠다는 것이다. 그래. 존중한다. 그리고 응원한다.

 

그 응원의 표시로 당신에게 가장 먼저 준비하도록 권하고 싶은 게 있다. 바로 원서다. 한나 아렌트는 아마도 히브리어와 독일어에 모두 능통했겠지만, 다행히(?) 원서는 영어로 써주었다. 덕분에 펭귄 출판사<Eichmann in Jerusalem>이라는 이름의 책을 아직도 출간해주고 있다.

 

 

Eichmann in Jerusalem - YES24

Eichmann in Jerusalem

www.yes24.com

 

Eichmann in Jerusalem: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 - YES24

나치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1906년 독일 졸링겐에서 태어난 아이히만은 1932년 비밀 나치당에 입당했고, 같은 해 하인리히 히믈러가 조직한 나치 친위대(SS) 정예부대에 들어갔다. 히믈러가 국가

www.yes24.com

 

아마 원서 또한 Amos Elon의 소개글을 통해 당신에게 이 책을 읽지 말라고 암시하겠지만, 이미 늦었다. 원서까지 사가며 결심하지 않았는가. 가볍게 무시해주고, 어렵게 구한 원서를 어떻게 활용할지나 생각해보자.

 

 

 

역서와 원서 '번갈아' 읽기

만약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처참한 번역 질이 온전히 번역가의 잘못이었다면, 주저 없이 원서를 대신 읽으라고 권유하겠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아렌트의 장황하고 초점 없는 문장들온갖 쓸데없는 미사여구와 삽입구로 차 있어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도, 그 의도를 살려 번역하는 것도 너무나도 어렵다.

 

무턱대고 원서로 이 책을 다 읽겠다고 달려드는 건 번역가가 했던 생고생을 다시 반복하는 일일 뿐이다.

 

<Eichmann in Jerusalem>의 첫 페이지. 한 페이지가 여덟 문장 밖에 되지 않는다.

 

때문에 원서를 활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서와 함께 '번갈아' 읽는 것이다. 역서만으로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은 계속 역서로 읽어나가다가, '응?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지?' 싶은 부분이 있다면 번역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원서에서 원문을 확인해보면 된다.

 

전 포스트에서 이야기했듯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정치철학서가 아니기에, 엄청난 배경 지식을 요하는 전문 용어가 튀어나오진 않는다. 때문에 당신이 문장을 이해할 수 없다면 어떤 개념어를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번역이 어색해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자, 그렇다면 이제 더 설명할 것도 없다. 바로 다음 포스트에서 원서를 활용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대표적인 대목들을 몇 개만 살펴보겠다.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3 - 원서가 필요한 순간들

'읽어도 될까요' 블로그를 응원해주세요. 한 번씩 눌러주시는 광고와 좋아요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앞선 두 개의 포스트를 통해 한나 아렌트의 을 읽지 않도록 끈덕지게 설득했지만,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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